스티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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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커 사진 |
스티커 사진 추억 일상
나면 그 다음 꾸미기를 했는데 내가 있는 사진을 꾸미기도 하고 서로 각자 꾸며주기
사진 꾸미기 앱도 있다. 이전엔 왜 이게 유행할까 싶다가도 셀프 사진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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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커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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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성에 맞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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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mt에서 있었던 일 |
대학 첫 학기에 시작해서 OT와 MT를 하는 행사가 있었다. OT는 오리엔테이션이고
MT는 학기 중에 학과 선배들과 모여서 숙소 잡고 놀러가는거 였다.
그 시기에는 선배들이 후배를 기 잡는다고 무조건 다 같이 가야 한다고 이야기 했다.
그래서 1학년때는 가기 싫어 하는 사람도 같이 가야 했다. OT는 그때도 대학 생활
이라고 좀 어수선한 느낌이었다. 신입생 환영은 환영이라 이벤트는 준비하고 했다지만
새벽까지 술마시고 그런건 나는 하지를 못했다. 다른 사람들 음주를 할때 나는 그저
잠으로 넘어 갔다. 그리고 여름 학기 중 MT로 갈때는 학과 내에서 가는 행사 였다.
그때는 한 대학교 2학년때까지는 갔지 싶다. 장소는 남해였다.
매년마다 MT는 그 장소로 잡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놀러 가는 건 맞긴 하다.
선배들이 준비한 방게임도 있었고 요리 대회라고 각 조로 짜서 음식을 요리 한 뒤 순위를
메기기도 했다. 저녁에는 레크레이션 이라고 남학생하고 선배들이 여장을 하는 무대도 있었다.
레크레이션 중에는 조 끼리 연습해서 춤을 연습해서 보여주기도 하는 등 장기 자랑을 했다.
나는 학기 초반에 학교에서 합창으로 under the sea를 부른적이 있어 그걸 앞에나와서
부르는 걸로 했다. 하지만 중간에 삑사리가 났다. 나는 순간 분위기 조졌구나, 하고 멍해 있었다.
그때 한 선배가 앞에 나와서 춤이라도 춰보라고 했다. 나는 순간에 옆사람 한테 '싸우자' 하고
덤벼 들었다. 그때 다른 사람들이 웃고 했었다. 나는 뭐가 웃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한 분은 나에게 물총을 쏘았고 상황은 마무리가 되었다.
조 마다 상금을 주는 이벤트도 있었지만 우리조는 받지는 못했다.
저녁이 되어서 동네 마실을 나오는데 개 한마리와 동네 주민분이 산책을 하고 있었다.
나는 개를 보고 반가워서 손을 크게 흔들었지만 그 옆에 동네 주민이 같이 다가 와서
손을 흔들어 주는거였다. '아이고 인사성 이 참 좋네.' 하고 지나가셨다. 나랑 옆에 같이 다니던
학과 친구는 웃겨서 초토화가 되었다. 그리고 피곤 해서 그런지 그 날도 잠이 쏟아져서 음주 가무는
하진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어제 요리 하다 남은걸로 해서 한끼 해결 했다. 거기에 편의점이나
슈퍼마켓은 있지만 왠만해서 해먹을 재료는 챙겨야 한다. MT가 재미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 함께 하는 친구가 있어서 잘 보내다 왔다 정도 이다. 학교에서 그저 해주는 건
아니고 회비를 4년치 내야 했었다. (사실은 mt는 4년치 까지는 가지 않는다. 대학교 4학년 되면
졸업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 까지만 해도 선배들이 기만 잡는다고 생각했지
챙겨준다라는 건 생각하지 못했던거 같다. 코로나 생긴 이후로는 강제는 없고 사건 사고도
있었기에 그런 문화가 바뀐 생황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활동을 하고 나서는 학과
친구들과 어색한 느낌 없이 잘 지내게 된다는 장점은 있다.
그리고 나랑 같이 다닌 학과 친구와도 지금도 잘 지내고 있다. 아마 mt 때 만들어준 추억 때문에
시간이 지나도 오래 이야기도 할 수 있었던거 같다. 조장님이었던 그 선배 분도 지금은 학교 선생님
인데 잘 계시는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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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사가 원하는 답 나의답 |
나의 말투에서 회사에 대한 경험이 없구나 하는 티가 난다. 사실은 맞다.
주변에서도 너가 안 잘리려면 말은 잘 해야 할거야 하고 눈치를 주기도 한다.
분명 사회 생활에서의 문제만 아니면 나는 열심히라도 하려는 사람이었을거다.
자신이 목표가 있고 그게 회사와 잘 맞는다고 생각하면 오래 가기도 한다.
나보고 단순 업무나 몸으로 움직이는 일을 하라고 하지만 기간이 제한 되거나
그 일에서 마저 나는 동떨어져 행동한다. 몸으로 하는 일은 동작이 빨라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회사를 가기가 그렇게 어렵다고 하는데 회사에 다니지 못하는
사람도 막막하고 취직이 되고 나서도 적응해 나가기 위해 시험과 같은 삶일거 같다.
목적은 있으면 나에게 동기 부여라는게 있다. 내가 처음에 겪어본 일은 힘들어도
나중에는 내가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사라는 안정감과 나의 몸값을 키워주는 일 그렇게 생활하는데 보통
삶이라고 본다. 우리는 무언가 하나를 하는데 포기는 하지 말라고 한다.
바깥에서 회사가 아니어도 기관과 관련되면 꼭 나에게 부딪쳐 보라고 이야기 한다.
나도 접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실제 스스로도 그걸 극복해 내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내가 그걸 포기 하지 않고 임무 날짜까지만 마치면 나는 스스로
기관에서 배운걸 토대로 계획해 나갈 수 있는 게 장점인거 같다.
그건 내 생활 태도를 바꾸게도 했다. 몸으로 쓰는 일은 오래 하면 규칙이나 시간
패턴을 챙기게 되고 좋아하는 일도 균형 있게 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일이 나에게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고 나와 맞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완전 나와 전공이 다른게 아니라면 기회가 왔을땐 해보는거도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회사를 다니는 와중에도 삶을 기획할 수 있는 방법도 찾아야 한다.
회사를 다니는 중간에도 나중에 내가 좋아하는 거라도 마음껏 할 수 있는 시간을 위해
축적해 두는거다. 휴식과 취미는 그런 방향에서 의미가 있다.
사실은 작은데서 일을 시작하는게 맞기도 하다. 회사에서 보는 나의 모습은
어떤 걸까, 그래도 배우고 하다보면 결과나 답으로 나오겠지, 생각할 뿐이다.
하지만 나도 나만의 세상에서 좀 더 표현하고 몸이 좀 힘들더라도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그런 곳이면 하는 바램이다.
김소현 (습작15)
어렸을때 명절을 지내러 친척집에 가면 먼저 찾는 곳은 큰어머니가 운영하는 반찬가게 였다.
늘 지금도 명절때마다 찾아 뵈면 큰어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반겨 주신다.
큰어머니가 운영하는 가게는 마을 시장이 있는 근처이다. 명절때 마다 시장안에 사람들도
북적이곤 했다. 큰어머니 가게 안에 들어서면 반찬 종류도 여러가지가 있다.
가게에 들렀다 친척집으로 가서 이야기를 나누다 점심 또는 저녁을 먹는다. 그리고
큰어머니가 만든 김치, 된장, 양념 꽃게, 물김치, 창란젓 등 반찬과 국을 밥상에서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정말 맛있게 반찬과 같이 밥을 먹었다. 우리는 먹는 와중에
사촌이 '저는 김치와 밥만 먹어도 맛있어요.' 라고 이야기 하기도 한다. 그러다
밥을 더 먹고 싶다고 이야기 하면 큰 엄마는 '오야' 하면서 밥을 더 퍼주기도 하셨다.
나도 반찬 중에서 김치도 있지만 창란젓을 맛있게 먹었다. 기본 반찬이라고 해도
한정식으로 이렇게 맛있는 반찬을 먹을만한 곳은 거의 없다고 본다.
나도 생각해 보면 따끈한 밥에 큰어머니 반찬만 있어도 다른거는 필요하지 않다고 본다.
명절이 되는 날에는 큰어머니가끓인 소고기무국도 있었다.
소고기무국도 간 맞추기가 어려운데 그걸 해내신다. 그래서 설날 아침은 속도 편하고 든든했다.
그렇게 큰어머니도 몇년간 반찬 장사를 하셨다. 그리고 한 20년 이상을 가게를 하시고
지금은 가게일을 하지 않으신다. 그래도 매번 명절에는 반찬과 국을 만들어 주신다.
우리는 집에 와서 들고온 큰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반찬을 식사 시간에 먹었다.
'엄마 큰엄마는 반찬을 참 잘하는거 같아요.' , '그럼 몇십년 경력이신데.'
정말 반찬 가게를 하거나 반찬을 지금도 만들고 하는걸 보면 큰어머니는 정말
부지런한 분이시다. 나는 반찬 비슷하게는 만들어보고 싶은데 생각만큼 되지는
않는다. (예전에 파를 썰어도 파 몇센치정도 썰까요 하고 물어본 사람이다) 그 일도 힘든일이겠지만 큰어머니는 우리가 밥을 먹고 있는 모습에서 보람을
느끼진 않으셨을까. 저번 추석때는 반찬을 싸온거랑 소고기 국을 먹는데 큰어머니의 모습이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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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된다 된다 나는 된다 |
나는 과연 할 수 있을까, 나는 그 물음표를 달지만 아직 해결할 방법을 찾지는 못했다.
나는 평소에도 생각을 하면 의문을 자주 가진다. 그게 좋을 수도 있지만 과하면
나의 내면 부정으로 자리 잡는다. 부모님은 그런 나에게 이 책을 권유해 주었다.
그래서 책을 펼쳤는데 무조건 할 수 있다의 과장된 표현은 아니다. 내 안에 있는
힘을 믿어라 정도의 말을 전해 준다. 그리고 내가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면
분명히 긍정적 결과로 돌아 오게 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나는 시도는 해보지만
늘 긍정의 결과를 기대하진 못했다. 그리고 결과를 기다리는 와중에도 기대 하기 보다
그렇다고 실망하지 않는 적당한 선 정도만 생각했던 거 같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사실은 나는 부정의 마음이 더 컸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런데 실제로 내가 한다고 생각해서 시작한거면 그게 되는 경우들도 있었다.
그걸 아직 내 안에서 깨달음을 얻지 못했을 수도 있었을거 같다. 그때는 내가
원하던 이상향이 있었다.그걸 놓지 않고 쭉 지켜왔기 때문에
다음 일을 할때가 편한점도 있다.
나는 나를 증명을 한다는게 타인에 의한 기대감과 부응을 찾고 있었던거 아니었을까
그리고 나 스스로도 할 수 있다는 자부심도 갖고 있어야 한다는걸 책을 통해
알아가게 된다. 그 긍정적 시너지를 스스로 연상하고 되뇌이고 하면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걸 여러 아티스트 분들도 인터뷰로 이야기하는
영상도 보았다. 생각도 하지만 실천으로 이어지면 그건 더 좋은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저는 어리버리에서 시작을 했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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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선에서 느낀 나의 자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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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고싶어지는 사람들 |
김소현(습작14)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무심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어째서 일까 나와 필연 관계가 아닌
사회 의무로 2차적으로 만나는 분들은 그 의무가 끝난 시점에서 헤어지는 시기도 온다.
그러면 우리는 그 필연관계에서 잠시 멀어진다. 그리고 각자의 역할에서 자신의 의무를
하고 있을때 어느 시점에서 어떤 시기와 상관없이 또 만나지게 된다.
나는 그때 만나면 기쁘다고 서로의 안부를 묻기도 한다. 마음의 깊이가 깊은 사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시간있다고 자주 연락하는 사이도 아닌데 말이다. 나는 무언가 한가지 집중을 하면
그 주변에 그렇게 신경을 쓰는 타입은 아니다. 원래 그런게 아니라 나도 사람들을 만나면서
만들어진 거다. 그저 나는 깨달은 거지만 억지 노력으로 사람의 관계를 만들면 안되겠다는
게 사회생활에서 배운거다. 어떤때는 일이라는게 주어져 일하는 관계에 어긋나지 않도록
협력을 했지만 그 의무가 사라질때 또 헤어짐이라는 순간도 오게 된다.
어쩌면 내가 그 관계가 힘들어서 놓는 거도 몇번 있다. 그런데 정말 나를 생각하고 연락해주는
사람은 정말 몇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내가 그걸 바래서도 안된다.
그리고 일에 있어서는 나에게 정말 도움을 주려고 하고 이야기도 들어주려고 했던 분들은
다른 생활을 해도 나에게 인생 멘토가 되어 주었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런건 아닐거다. 나에게 선을 넘거나 무시하는 사람은 그렇게 기억은 하고 싶지 않지만
서로의 선을 지키면서 만나게 되고 그 관계가 유지 되었던 거만해도 인생에서도
귀한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곧 성장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만 아직 까지도 나의
그전 모습만 기억을 하는 분들도 있다. 지금은 보이지 않아도 나에게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는
감사함만은 간직하면서 살아야 겠다.
마음을 파는 카페 사장님
김소현(습작13)
나는 산책길을 걷다가 우연히 마주하는 곳이 있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잘 찾아가지 못했던 장소,
그런 곳을 좋아하기도 한다. 버스타고 10분내에 도착하는 마산 구청에 한 카페가 있다.
나와 함께 나이를 먹었다면 한 13년 정도 된거 같다. 고등학생때도 늘 지나면서 가보지 못했던
그런 곳이었는데 늘 눈에 밟혔다. 그런곳은 뭔가 특별하게 있을지도 모른다.
그곳은 아담하게 테이블 몇개 정도 있는 작은 카페였다. 그런데 내가 놀란건 메뉴 가격표였다.
아메리카노가 2000원 밖에 안하는거였다. 그 가격표를 보고 '정말 이럴 수가 있나' 하며 생각했다.
나는 처음 가는 카페면 커피가 맛있는지 먼저 본다. 안내판에는 고급 커피만을 취급하는 카페라고
써있었다. 그래서 인지 커피가 나와 마셔보는데 오... 하며 나도 모르게 감탄은 나왔다.
맛집 리뷰 이런데서 카페를 홍보하기 위해서 맛있다는 표현은 아니다. (정말 맛이 있어서 그렇다.)
그때 카페 사장님은 직접 구운 쿠키라고 만들다 남은 쿠키 한 조각을 서비스로 주셨다.
나는 여기에 두번은 놀랐다. (정말 이런곳은 잘 되어야 한다.) 나는 감사하다고 이야기 하고
다음에 또 들러야지 하고 생각했다. 보통 물가가 오르면 가격이 오르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도
그 맛이 안나는 경우들도 있는데 그곳은 경력있는 카페다. 나는 커피 가격도 저렴 하면서
맛도 있는 그 카페가 자주 생각나게 되었다.
그 다음날 두번째 들렀을때 커피를 시켰는데 저번과 같이 쿠키 조각을 서비스로
주셨다. 나는 커피도 저렴한데 쿠키를 한개 더 샀다. 쿠키가 한입 쿠키라고 있는데 정말 자그맣게
한입 크키로 파는 게 있었다. 가격은 1500원 이다. 이번에는 버스를 타지 않고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그날따라 발걸음도 가볍다. 쿠키 한조각 먹는데 한개는 초코칩 쿠키이지만 다른 한개는 건강한
맛이 난다.(맛이 없는게 아니고 옛날 과자 처럼 어르신들도 좋아하는 그런 맛이었다.)
산책로를 걷는데 햇살은 정말 눈부시다. 커피를 마시는 동안 벌써 집 근처까지 도착이다.
버스를 안타고 다니더라도 가끔은 산책을 걸어도 좋지, 하며 생각한다. 집 근처까지만
걸어도 30분은 소요가 된다. (운동도 되고 좋아요)
그곳 카페에서 주는 커피는 사장님의 마음을 담아서 만든거구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체인점 커피보다 동네에 개인으로 차려진 카페를 좋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신 커피가 맛있는 곳은 찾기 어렵다는 함정도 있다.
동사무소 앞 포장 마차 트럭
김소현(습작 12)
우리집 주변에 동사무소 앞 분식 포장 마차 트럭이 있다. 그 포장 마차는 동사무소가 생기기 이전에
내가 5살 집으로 이사 올때부터 있었다. 그때는 아저씨와 아주머니 두분이서 같이 하고 계셨다.
메뉴는 오뎅, 호떡, 떡볶이, 순대, 핫도그 등을 팔았다. 나랑 동생이 학원을 마치고 집에 돌아 갈때
분식을 먹고 싶으면 그 트럭에 가서 오뎅과 함께 국물고 같이 퍼서 먹을 수 있었다.
추운 겨울이면 오뎅과 함께 주는 국물맛을 호호 불면서 입김을 내면서 맛있게 먹었다.
가격은 지금 물가가 오른 시기보다 저렴한 가격이어서 그 시기에 오뎅 한개가 500원 정도 했는데
3개를 먹으면 1000원이었다. 그래서 몇 사람 같이와서 오뎅을 먹고 남은 꼬지 갯수가 10개 이하는
되기도 했다. 엄마와 함께 시장을 보고 올때면 그 포장마차를 지날때 군침을 넘길때도 있었다.
엄마는 그걸 눈치 챘는지 한번은 오뎅 먹고 갈래 하고 이야기도 했다.
그 시기에는 배가 많이 고팠나 보다. 아빠도 특히 오뎅을 좋아 했기 때문에 기본으로 3개는
챙겨 먹었다. 최근에는 그 포장 마차에 가면 핫도그를 찾기도 한다. 핫도그는 작은거에 500원 정도
한다. 큰거는 1000원 정도 했는데 나는 큰거는 잘 못먹었다. 왜냐하면 빵은 밋밋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포장 마차에서 큰거를 먹을때 아저씨가 설탕 케첩을 같이 묻혀줄까 하면 그렇게 해달라고
한다. 그러면 핫도그가 맛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20년이 지나 나와 함께 자란 포장마차 였다.
지금도 5시 쯤 간식이 먹고 싶은 시간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지금은 아저씨 혼자서 분식을
판매 하고 있다. 물가는 오른 지금도 가격대에 비해 저렴하게 판매를 하고 계신다.
나는 순대도 사서 가는데 내장하고 섞어 달라고 말한다. 그리고 주변 정육점에 가서 곰국을 사고
순대를 같이 넣어서 끓여 먹는다. 그러면 순대국이 된다.
원래 세월을 거치며 오랫동안 한자리에 있는 일은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도 운영하고 있고 사람들의 배고픔을 채워주는 자리로 지켜주고 있구나
하며 감탄하기도 한다. 공원 주변으로 5일 장을 여는 날에도 일찍 부터 와서
포장마차 문을열고 그 자리에 계속 계신다. 나는 말을 자주 못드리지만 감사한 마음에
핫도그나 호떡이든 간편하게 먹으려고 사먹는다. 호떡은 1000원 정도 한다.
겨울에 날도 차는데 호떡 하나 사러 가볼까 생각한다.
p.s. 동사무소가 밑에 있었을때 아르바이트를 한적이 있는데 세무과에서 기간제로 일하는 언니가
있었다. 주변에 분식 먹을 곳이 없다고 말을 해주었다. 내가 우리집 주변에 분식 파는 곳이 있다고 하니까
거기까지 어떻게 올라가서 먹냐 라고 하였다. 그러고 보니 시내쪽으로 내려와도 분식 맛있는 집은
거의 없다. 아니면 버스타고 15분 타고 가야 분식 먹을 시장이 있다. 그 포장마차가 주변에 있는거만
해도 감사하다.
크림빵
김소현(습작 11)
우리 동네에 빵집 가게가 있다. 운영을 한지도 꽤 오래된 빵집이다. 빵 종류는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지만
분위기에서 유럽의 작은 가게 처럼 비슷하게 생겼다. 나는 그곳에 둘러보면서 빵들과 쿠키 들을 보지만
자주 사가는 빵은 크림빵이다. 어릴때는 살이 찐다고 먹지 못했던 크림빵이지만 최근에는 그 빵이
자주 눈에 띈다. 가격은 하나에 1500원으로 저렴하기도 하다. 예전에 내가 초반에 샀을때는 800원대로
한적도 있었다. 크림빵은 엄마 아빠 어릴때 부터 있었다고 하는데
그 시기는 비싸기도 하고 사먹기도 어려웠다고 한다. 체인점에서 파는 빵은 소화도 잘 안되고 크림이
들어가는 빵이어도 그렇게 맛이 없다. 나는 그 빵집에서 크림빵 한개 사고 먹어보았을때 그곳에서
먹는 빵 촉감이 참 좋았다. 크림도 그리 느끼하지 않다. 크림도 부담스럽지 않은 단맛이 난다고 할까
그 표현은 구름을 베어 먹었다라고 해야 하나. 어느덧 먹고나면 입으로 들어가고 또 사라진다.
하지만 또 찾고 싶은 여운이 남는다. 중 고등학생때만해도 그 빵집이 궁금했지만 방문은 해보지
못한거 같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편의점에 비슷하게 예전 부터 나온 크림빵 제품도 있다. 그 빵은 사먹은 적은 있는데
단맛이 너무 강하다. 어쩌면 그 동네 빵집이 기능장 분의 빵에 대한 진심을 담아내서
였을까 부드러운 크림빵 촉감만 남나보다. 나는 버스를 타고 어디 나갔다가 문화동 정류장에 내릴때면
그 빵집을 생각날때마다 들러보게 되었다. 어떤때는 그 빵이 다 팔릴때 아쉬워 할때도 있었다.
요즘은 새로운 맛들로 인기를 끄는 디저트도 생겨 나고 있지만 나는 이전부터 운영한 작은
가게라도 그곳의 정서가 있다. 그래서 나는 그 집의 크림빵 단골이 되어 또 기회가 되면
찾아가고 싶다.
p.s 생각보다 나는 고급 입맛이다.
AI가 못하는 일
김소현 (습작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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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가 못하는 일 |
Ai가 일상화 되어가고 있는 지금, 사람이 하는 일은 Ai가 대체되고 일자리를 잃는
현상도 일어나고 있다. 왜냐하면 회사에서 손해를 보는거 보다 인공 지능을 배치 해두었을때
더 신속 정확하게 일을 처리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년 그리고 중년 세대도 현재 일자리를
찾으면 어렵다. 사람 손으로 하는 일 마저도 대체 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질
수 있다.
나는 Ai가 할 수 있는 일이 더많아 지는거보다 못하는 일도 있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사람은 생각을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판단에서 일을
처리 할 수 있고 일에 대한 책임은 Ai가 대체 될 수 없는 사람 만의 것이다.
지금 쓰는 이 글도 복사해서 챗지피티로 가져가면 좀 더 정밀하고 사람들에게
더 알기 쉽게 전달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마다 글의 특성도 다 다르다.
잘 써진다고 해서 자신만의 글이 되지는 못하기 때문에 나는 직접 글을 쓴다.
물론 Ai를 이용해서 사용을 잘 하는 사람이 더 곽광을 받을 지도 모른다.
함께 가야만 한다면 Ai의 좋은점은 쓰되 결정은 사람이 하면된다. 그런 방법을 사용할 지도
모른다. 나는 온전히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보았을때 사람 손을 여러번 거쳐서
가는 맛집 요리 비결과 같은 건 Ai가 할 수없는 일이라 생각된다.
Ai가 하는 영역을 넘어 사람이 브랜드화되고 창작 영역을 잘 다루는 사람이
진정한 리더가 되기도 한다. 사실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거쳐야 하는 시련들이
있다. 그 맛집이라서 그 사람이라서 할 수 있는 일, 희소하지만 그게 살아가는 방법일거 같다.
학교에서는 정서적 교류를 할 수 있는 선생님도 대체 될 수 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쌓아온 경력도 무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학생들의 다양한 모습을 지켜보고
보살펴 줄 수 있는 사람은 선생님 밖에 없다. 그런 학교 수업마저도 ai가 도입 된다는 말이 조금 아쉽지만 말이다.
사실 예술적인 부분도 장인정신을 발휘가 되기 때문에 사람이 직접 듣고 사운드를 맞추는 음악 부분
그리고 춤 연극 그런 이야기들은 사람들의 노력이 들어가야 훨씬 더 깊은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나도 최근에는 그림을 그리면서 아이패드로 그리는 그림이 신기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본질에서 찾았을때 아이패드가 아니라 직접 종이에 그리는 일이 그림 감각을
익힐 수 있는 방법이란 걸 알았다. 그래서 인지 요즘은 종이에 그린 그림에 집중해 보기로 했다.
사실 그려진 그림을 선물하는거 보다 직접 그린 그림을 선물하는게 감동으로 다가오는 거 (?) 처럼 말이다.
(비유가 적절하지 않다면 죄송합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계발해 나가는 게 성취감에 있어서 좋습니다. (하지만 끝은 없다는거)
Ai도 하나의 도구로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하나씩 잘하는 걸 발견하다 보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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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의 시작 일기 부터 쓰기 |
원래 글쓰기는 처음부터는 어떤거 부터 쓸지 고민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글을 쓰는 사람도 첫 문장을 무엇으로 정하면 좋을까 생각을 가지기도 합니다.
제가 글쓰기 수업을 들으면서 글을 쓰시는 작가 분은 헤드라인 이라고 맨 앞문장을
적어도 글이 된다고 했습니다. 저 역시도 글에 초보 였고 글은 생각나는 대로 쓰는 성향이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글이 만들어 질까 생각하면 그거도 꾸준함과 경험이 필요한거 같습니다.
이전부터 저는 글을 잘 쓰면 좋겠다 생각을 해왔고 저 역시도 그런 제 모습을 떠올리며
상상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저 나에게 주어진 시간에 일을 하고 나서도 내 생각을
자주 써보고 싶다 라는 마음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거에 대한 동기 부여가 되었다기 보다
그저 내가 좋아하니깐 하는거 같습니다.
그러면 글쓰기는 어떻게 시작 하면 좋을까. 저는 플랫폼이 있으면 거기에 글을 옮겨 적고
일기 쓰듯이 쓰면 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건 곧 기록이기도 합니다.
저도 원래 블로그 글쓰기를 일기 쓰듯이 쓰면서 해왔었습니다. 그건 처음부터 시작 했을때
사람들이 봐도 짤막한 문장에 이해 하기 어려운 글이었을거라 생각합니다.
창원에 사진찍으로 다니다 창원시 블로그 기자 분이'너 블로그 완전 깜찍하게 쓰네?'
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그땐 순수한 열정으로 남긴 블로그 글이기도 했으니까요.
저는 글쓰는게 어떤 인정과 좋아요를 받기 위해 글을 쓴다고 하면 그거도 아닌거 같습니다.
(이미 제 네이버 블로그는 방문자수 줄었습니다. 시작은 네이버에서 시작 했지요)
저는 단순 취미로 올리고 싶었을 뿐이니까요. 저도 몇가지 글쓰기 책을 보곤 하는데
수필까지 쓸 수 있어도 문학으로 깊이 들어가게 되면 제가 이걸 지어낸다거나
작품으로 만들기 까지는 시간이 걸릴 거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일 범위 내에서
시작해봐도 좋을거 같구요. 저는 글을 너무 어렵게는 쓰지 않으려 합니다.
일기도 특별할거 없이 나만의 표현방법으로 쓰면 됩니다. 시 여도 되고 소설이어도
좋습니다. 다만 수필은 어느 나이대나 배울 수 있다고 하지만 시나 소설은 20대 부터
훈련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기록을 시작하면 오늘 하루를 살아내는 데에 감사함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록은 계속 쓰다보면 내가 어느 시기에 이런 글도 썼구나 하는 걸
간직했다가 꺼내어 볼 수 있습니다. 저도 기록을 하면서 느꼈기 때문입니다.
저도 수필을 입문 했을때 몇사람이 쓴 작품들도 보면서 나도 다음에 참고 해야지 하며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몇 사람 글들을 보고 나만의 글쓰기도 시도해 보면 됩니다.
일기는 나만의 풍부한 감정표현으로 쓴다면 글쓰기가 훨씬 재밌어 질겁니다.
그리고 일기를 쓸때는 누군가의 평가를 받는건 아니니 자유롭게 써보세요.
상처는 받지만 그곳에서 배움은 있다.
김소현(습작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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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쌀 모으기 |
(중3) 학교 다닐때 사랑의 쌀 모으기 행사에 기부하기로 했다.
선생님은 부모님께 이야기 해서 쌀을 봉지에 담아 오라고 말하셨다.
나도 집에서 쌀을 봉지에 넣으며 불우 이웃에 보탬이 되었으면 했다.
그날 몇몇 친구들은 봉지 쌀을 책상에 갖다 두었는데
선생님이 내가 가져온 쌀 봉지를 두고 ' 이건 새모이 먹으려고
가져 온건가.' 하고 말씀 하셨다.
사실 얼마 만큼 담을 지 몰라 밥그릇 한 개 양만큼 넣었다.
나는 쉬는 시간에 선생님과 친구들 몰래 그 쌀 봉지를 빼왔다.
그날 집에 가서 중간 봉지로 쌀을 더 담아 제출했다.
그때 선생님이 내 이름은 부르지 않아서 다행이다.
사랑의 소리
김소현(습작 10)
나는 가장 애틋한 말은 가족에서 자주 듣는 이야기 일 듯하다. 요즘은 폰으로 보느라 사람들과 대화하는게 줄어들기도 한다. 가까이 있었지만 우리는 어딘가 하나 잊어가는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나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외갓댁을 찾는 일이 없다.
우리가 집으로 돌아갈때면 외할머니는 호주머니를 주섬주섬 하며 용돈을 주신다.
외할머니가 밭에서 기른 감을 팔거나 굴까면서 벌었던 돈이었다. 외갓댁에 가면 ‘왔나?’ 하면서 반기던 외할머니, 그리고 ‘조심히 가래이’ 하면서 손을 흔들어주신 외할머니, 어쩌면 나도 그 모습이 그리워 했는지도 모른다. 외할아버지도 내가 시험 공부를 하고 있을때, ‘소현아 공부 열심히 하그라이.’ 하는 다정한 목소리가 기억에 남는다. 한번은 외사촌과 서랍을 뒤적거리다가
도장을 발견해 바닥을 엉망으로 만든 적이 있다. 그때 외할아버지는 우리를 호통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왜 그런지 그런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모습이 그립다.
새벽에 일어나서 아침 챙긴다고 그릇이 달그닥 하는 소리, 엄마와 외할머니의 투닥거리는 대화
이젠 그런 말들도 지나간 추억이겠지? 사실 우리집 주변에도 들을 수 있는 소리는 또 찾아 볼 수 있다. 이웃간에 잘 지냈냐며 서로 말을 주고 받는 사람, 청소하면서 인사하는 아주머니, 주민에게 먼저 인사하는 경비 아저씨, 다정다감하고 친근감 있는 말도 큰 차원에서 사랑의 소리이다.
요즘은 그런 사람도 없고 지금은 왜 듣기가 어려운걸까, 생각해 본다. 시간이 흐르면 그런 문화도
바뀔 수 밖에 없구나 생각할 뿐이다. 하지만 내가 아파트를 지나며 할머니와 손자가 서로 손 흔들며 인사를 하고 있다. ‘할머니 빠빠이~!’ 손자가 인사하자 할머니도 ‘잘 가그래이’ 하며 인사를 한다.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소리이다. 내가 듣고 싶었던 그 사랑의 소리이다. 그날 이후로는 그
목소리가 자꾸 귓가에 맴돈다.
습작9(김소현)
롤링 페이퍼는 종이에 한 사람이 이름을 적고 여러사람이 돌아가면서 그 친구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는 걸 말한다. 중학교 졸업하기 전에 반끼리 같이 하기로 했다.
내 이름도 저힌 종이도 반 친구들의 손을 거쳐가면서 종이가 꽉 채워 졌다.
나는 걱정반 기대반으로 종이를 보았다. 역시나 반 친구들은 나에게 힘을 주는 말을
많이 적었다. 대부분은 ‘소현이 이야기 하는 모습 보고 싶다.’ ‘소현이가 웃는 모습을
보고 싶어.’ 였다. 학교 친구들에게 그런 이미지 였다니 조금은 놀랐다.
사실 평소에는 표정이 굳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곤 했다. 웃기지 않는데 웃는 거도
이상하게 보일거 같아서라고 생각해서 이기도 했다. 그때 나는 조금 변화도 있어야 겠다.
싶어서 내가 인사를 해주었다면 좋겠다는 친구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니 그 친구는
기분 좋아 하면서 인사를 해주었다. 그때 나는 처음 알았다. 원래 사람들에게 무섭게
다가가지 않으려면 내가 인사를 먼저 해야 하구나. 하는 걸 알게 되었다.
사실 기본적인거인데도 내 생각의 딜레마 때문에 내가 인사를 건네는게 두려워서 이기도 하다.
그저 솔직히 롤링페이퍼가 있어 다른 사람이 보이는 나의 이미지를 돌아 볼 수 있어서
깨달은 점도 있다.
고등학교때도 졸업하고 나는 쉬는 시간에 롤링 페이퍼가 생각이 나서 내가 직접 롤링페이퍼를
적어 다라고 반에 종이를 돌린적이 있다. 나는 롤링페이퍼를 봤을때 놀랐던 점이 있었다.
내가 그때 피드백이라는 건 알았지만 조금 조언을 하는 쪽에 가까웠다. ‘소현아 너가 이야기
할때 반어법은 좋지 않은거야, 그점은 고쳤으면 좋겠어.’ ‘너는 우리들 있는데서 따로 놀고
하더라 그점이 아쉬워.‘ ’만화를 좋아하더라도 그런 친구랑 어울리지 마. 너한테 안좋을거야.’
조언은 맞는데 나는 그때 이해를 하지 못해서 당황스럽기도 했다. 만화도 내가 좋아할 수도 있는거고 내가 알고 있는 선에서는 받아들이기가 힘든 말이기도 했다.
나는 그때 알게 된게 나에 대해 얼마 안 지내본 친구들은 서로 이해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보니 나는 자연스럽게 반 친구들과 그렇게 소통도 자주 하지 않게되었다.
나는 좀 다르게 생각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나에 대해 알지 못하더라도
이해 받으려고 하지 않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 생각하기에 롤링 페이퍼를
적더라도 그 친구의 장점을 발견하고 응원해주는 글들을 더 많이 적었으면 생각도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평소에 가던 예술촌 작가님과 공방에서 대화를 나누었는데
‘소현아 너를 지지 하고 마음이 맞고 그런 친구들과 지내. 너에게 못되게 말한 친구들은
아직 사람이 안되서 그런거야, 사람은 되었으면 너에게 사과를 할거고, 안좋게
대한 사람은 그냥 생까.’
저는 그저 유쾌하게 대답하는 작가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나도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그렇게 믿고 싶다. 나도 지금은 나를 응원해준 친구들의 편지지만 가지고 있다.
그 롤링페이퍼는 이제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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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쓰기 위하 재테크 |
보통은 돈은 쉽게 빠져 나가는게 대부분인거 같습니다. 돈을 버는 분들도
내가 쓸만큼의 돈은 쓰고 저축을 하는 이유도 있습니다. 어렸을때 돈을 모으고
쓰는 건 해보았지만 정작 내가 돈을 모으고 유지 하는 방법을 잘 몰랐을 겁니다.
저는 사회 초년생이 되면서도 이 부분에 대한 용어를 잘 알아야 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마 돈 관리는 어렸을때 부터 관리 방법에 대해 철저히 교육이 되어야 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돈을 쓰지만 지키는 방법을 알고 싶다면 재테크로 분야를 알아 보는거도 좋을거 같습니다.
이건 어릴때도 중요하지만 막 사회에 발을 딛는 청년들에게도 중요합니다.
저도 20대는 돈을 쓸때만 쓰고 그 외에는 돈을 유지하는거만 생각했지
돈을 모아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거 같습니다. 그래서 재테크에 대해
1도 모르는 저도 이해 할 수 있는 용어들을 책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대 중반에 선배들이 적금은 모아 두어야 한다 라고 이야기 하는데
그 이유도 있었습니다. 내가 돈을 벌때는 적금으로 이자 몇퍼센트도 돈이 된다는 걸
늦게 알았기 때문입니다. 저희 엄마도 그걸 가장 잘 알고 있기에 저에게 항상
돈을 쓰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곤 했습니다.
저는 이 책을 보면서 주식 투자 이부분은 이해는 어렵지만 내가 만약 월세를
내고 산다면 돈을 분류 하면서 정리도 잘 해야 겠구나 하는 걸 느낀 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직접 해보아야 알거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적금이나 모으는 방법을 모른다면 다른생각하지 말고
돈을 벌어두어라고 합니다. 저도 20대 때 그 방법을 잘 몰랐지만
이 책들을 보면서 돈을 왜 벌어야 하는가 생각하는 시간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p.s.돈은 쓰기는 쉽지만 벌기는 어렵다는 걸 깨달아가는 중입니다.
그래서 교육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잊지 않아야 하는건 돈을 벌더라도
언제 어떤일 일어날지 모르니 모아두고 하는거도 중요합니다.
돈을 너무 안써도 문제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