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부곡 병원 벽화 봉사(습작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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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mt에서 있었던 일 |
대학 첫 학기에 시작해서 OT와 MT를 하는 행사가 있었다. OT는 오리엔테이션이고
MT는 학기 중에 학과 선배들과 모여서 숙소 잡고 놀러가는거 였다.
그 시기에는 선배들이 후배를 기 잡는다고 무조건 다 같이 가야 한다고 이야기 했다.
그래서 1학년때는 가기 싫어 하는 사람도 같이 가야 했다. OT는 그때도 대학 생활
이라고 좀 어수선한 느낌이었다. 신입생 환영은 환영이라 이벤트는 준비하고 했다지만
새벽까지 술마시고 그런건 나는 하지를 못했다. 다른 사람들 음주를 할때 나는 그저
잠으로 넘어 갔다. 그리고 여름 학기 중 MT로 갈때는 학과 내에서 가는 행사 였다.
그때는 한 대학교 2학년때까지는 갔지 싶다. 장소는 남해였다.
매년마다 MT는 그 장소로 잡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놀러 가는 건 맞긴 하다.
선배들이 준비한 방게임도 있었고 요리 대회라고 각 조로 짜서 음식을 요리 한 뒤 순위를
메기기도 했다. 저녁에는 레크레이션 이라고 남학생하고 선배들이 여장을 하는 무대도 있었다.
레크레이션 중에는 조 끼리 연습해서 춤을 연습해서 보여주기도 하는 등 장기 자랑을 했다.
나는 학기 초반에 학교에서 합창으로 under the sea를 부른적이 있어 그걸 앞에나와서
부르는 걸로 했다. 하지만 중간에 삑사리가 났다. 나는 순간 분위기 조졌구나, 하고 멍해 있었다.
그때 한 선배가 앞에 나와서 춤이라도 춰보라고 했다. 나는 순간에 옆사람 한테 '싸우자' 하고
덤벼 들었다. 그때 다른 사람들이 웃고 했었다. 나는 뭐가 웃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한 분은 나에게 물총을 쏘았고 상황은 마무리가 되었다.
조 마다 상금을 주는 이벤트도 있었지만 우리조는 받지는 못했다.
저녁이 되어서 동네 마실을 나오는데 개 한마리와 동네 주민분이 산책을 하고 있었다.
나는 개를 보고 반가워서 손을 크게 흔들었지만 그 옆에 동네 주민이 같이 다가 와서
손을 흔들어 주는거였다. '아이고 인사성 이 참 좋네.' 하고 지나가셨다. 나랑 옆에 같이 다니던
학과 친구는 웃겨서 초토화가 되었다. 그리고 피곤 해서 그런지 그 날도 잠이 쏟아져서 음주 가무는
하진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어제 요리 하다 남은걸로 해서 한끼 해결 했다. 거기에 편의점이나
슈퍼마켓은 있지만 왠만해서 해먹을 재료는 챙겨야 한다. MT가 재미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 함께 하는 친구가 있어서 잘 보내다 왔다 정도 이다. 학교에서 그저 해주는 건
아니고 회비를 4년치 내야 했었다. (사실은 mt는 4년치 까지는 가지 않는다. 대학교 4학년 되면
졸업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 까지만 해도 선배들이 기만 잡는다고 생각했지
챙겨준다라는 건 생각하지 못했던거 같다. 코로나 생긴 이후로는 강제는 없고 사건 사고도
있었기에 그런 문화가 바뀐 생황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활동을 하고 나서는 학과
친구들과 어색한 느낌 없이 잘 지내게 된다는 장점은 있다.
그리고 나랑 같이 다닌 학과 친구와도 지금도 잘 지내고 있다. 아마 mt 때 만들어준 추억 때문에
시간이 지나도 오래 이야기도 할 수 있었던거 같다. 조장님이었던 그 선배 분도 지금은 학교 선생님
인데 잘 계시는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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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사가 원하는 답 나의답 |
나의 말투에서 회사에 대한 경험이 없구나 하는 티가 난다. 사실은 맞다.
주변에서도 너가 안 잘리려면 말은 잘 해야 할거야 하고 눈치를 주기도 한다.
분명 사회 생활에서의 문제만 아니면 나는 열심히라도 하려는 사람이었을거다.
자신이 목표가 있고 그게 회사와 잘 맞는다고 생각하면 오래 가기도 한다.
나보고 단순 업무나 몸으로 움직이는 일을 하라고 하지만 기간이 제한 되거나
그 일에서 마저 나는 동떨어져 행동한다. 몸으로 하는 일은 동작이 빨라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회사를 가기가 그렇게 어렵다고 하는데 회사에 다니지 못하는
사람도 막막하고 취직이 되고 나서도 적응해 나가기 위해 시험과 같은 삶일거 같다.
목적은 있으면 나에게 동기 부여라는게 있다. 내가 처음에 겪어본 일은 힘들어도
나중에는 내가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사라는 안정감과 나의 몸값을 키워주는 일 그렇게 생활하는데 보통
삶이라고 본다. 우리는 무언가 하나를 하는데 포기는 하지 말라고 한다.
바깥에서 회사가 아니어도 기관과 관련되면 꼭 나에게 부딪쳐 보라고 이야기 한다.
나도 접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실제 스스로도 그걸 극복해 내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내가 그걸 포기 하지 않고 임무 날짜까지만 마치면 나는 스스로
기관에서 배운걸 토대로 계획해 나갈 수 있는 게 장점인거 같다.
그건 내 생활 태도를 바꾸게도 했다. 몸으로 쓰는 일은 오래 하면 규칙이나 시간
패턴을 챙기게 되고 좋아하는 일도 균형 있게 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일이 나에게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고 나와 맞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완전 나와 전공이 다른게 아니라면 기회가 왔을땐 해보는거도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회사를 다니는 와중에도 삶을 기획할 수 있는 방법도 찾아야 한다.
회사를 다니는 중간에도 나중에 내가 좋아하는 거라도 마음껏 할 수 있는 시간을 위해
축적해 두는거다. 휴식과 취미는 그런 방향에서 의미가 있다.
사실은 작은데서 일을 시작하는게 맞기도 하다. 회사에서 보는 나의 모습은
어떤 걸까, 그래도 배우고 하다보면 결과나 답으로 나오겠지, 생각할 뿐이다.
하지만 나도 나만의 세상에서 좀 더 표현하고 몸이 좀 힘들더라도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그런 곳이면 하는 바램이다.
김소현 (습작15)
어렸을때 명절을 지내러 친척집에 가면 먼저 찾는 곳은 큰어머니가 운영하는 반찬가게 였다.
늘 지금도 명절때마다 찾아 뵈면 큰어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반겨 주신다.
큰어머니가 운영하는 가게는 마을 시장이 있는 근처이다. 명절때 마다 시장안에 사람들도
북적이곤 했다. 큰어머니 가게 안에 들어서면 반찬 종류도 여러가지가 있다.
가게에 들렀다 친척집으로 가서 이야기를 나누다 점심 또는 저녁을 먹는다. 그리고
큰어머니가 만든 김치, 된장, 양념 꽃게, 물김치, 창란젓 등 반찬과 국을 밥상에서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정말 맛있게 반찬과 같이 밥을 먹었다. 우리는 먹는 와중에
사촌이 '저는 김치와 밥만 먹어도 맛있어요.' 라고 이야기 하기도 한다. 그러다
밥을 더 먹고 싶다고 이야기 하면 큰 엄마는 '오야' 하면서 밥을 더 퍼주기도 하셨다.
나도 반찬 중에서 김치도 있지만 창란젓을 맛있게 먹었다. 기본 반찬이라고 해도
한정식으로 이렇게 맛있는 반찬을 먹을만한 곳은 거의 없다고 본다.
나도 생각해 보면 따끈한 밥에 큰어머니 반찬만 있어도 다른거는 필요하지 않다고 본다.
명절이 되는 날에는 큰어머니가끓인 소고기무국도 있었다.
소고기무국도 간 맞추기가 어려운데 그걸 해내신다. 그래서 설날 아침은 속도 편하고 든든했다.
그렇게 큰어머니도 몇년간 반찬 장사를 하셨다. 그리고 한 20년 이상을 가게를 하시고
지금은 가게일을 하지 않으신다. 그래도 매번 명절에는 반찬과 국을 만들어 주신다.
우리는 집에 와서 들고온 큰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반찬을 식사 시간에 먹었다.
'엄마 큰엄마는 반찬을 참 잘하는거 같아요.' , '그럼 몇십년 경력이신데.'
정말 반찬 가게를 하거나 반찬을 지금도 만들고 하는걸 보면 큰어머니는 정말
부지런한 분이시다. 나는 반찬 비슷하게는 만들어보고 싶은데 생각만큼 되지는
않는다. (예전에 파를 썰어도 파 몇센치정도 썰까요 하고 물어본 사람이다) 그 일도 힘든일이겠지만 큰어머니는 우리가 밥을 먹고 있는 모습에서 보람을
느끼진 않으셨을까. 저번 추석때는 반찬을 싸온거랑 소고기 국을 먹는데 큰어머니의 모습이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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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된다 된다 나는 된다 |
나는 과연 할 수 있을까, 나는 그 물음표를 달지만 아직 해결할 방법을 찾지는 못했다.
나는 평소에도 생각을 하면 의문을 자주 가진다. 그게 좋을 수도 있지만 과하면
나의 내면 부정으로 자리 잡는다. 부모님은 그런 나에게 이 책을 권유해 주었다.
그래서 책을 펼쳤는데 무조건 할 수 있다의 과장된 표현은 아니다. 내 안에 있는
힘을 믿어라 정도의 말을 전해 준다. 그리고 내가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면
분명히 긍정적 결과로 돌아 오게 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나는 시도는 해보지만
늘 긍정의 결과를 기대하진 못했다. 그리고 결과를 기다리는 와중에도 기대 하기 보다
그렇다고 실망하지 않는 적당한 선 정도만 생각했던 거 같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사실은 나는 부정의 마음이 더 컸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런데 실제로 내가 한다고 생각해서 시작한거면 그게 되는 경우들도 있었다.
그걸 아직 내 안에서 깨달음을 얻지 못했을 수도 있었을거 같다. 그때는 내가
원하던 이상향이 있었다.그걸 놓지 않고 쭉 지켜왔기 때문에
다음 일을 할때가 편한점도 있다.
나는 나를 증명을 한다는게 타인에 의한 기대감과 부응을 찾고 있었던거 아니었을까
그리고 나 스스로도 할 수 있다는 자부심도 갖고 있어야 한다는걸 책을 통해
알아가게 된다. 그 긍정적 시너지를 스스로 연상하고 되뇌이고 하면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걸 여러 아티스트 분들도 인터뷰로 이야기하는
영상도 보았다. 생각도 하지만 실천으로 이어지면 그건 더 좋은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저는 어리버리에서 시작을 했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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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선에서 느낀 나의 자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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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고싶어지는 사람들 |
김소현(습작14)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무심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어째서 일까 나와 필연 관계가 아닌
사회 의무로 2차적으로 만나는 분들은 그 의무가 끝난 시점에서 헤어지는 시기도 온다.
그러면 우리는 그 필연관계에서 잠시 멀어진다. 그리고 각자의 역할에서 자신의 의무를
하고 있을때 어느 시점에서 어떤 시기와 상관없이 또 만나지게 된다.
나는 그때 만나면 기쁘다고 서로의 안부를 묻기도 한다. 마음의 깊이가 깊은 사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시간있다고 자주 연락하는 사이도 아닌데 말이다. 나는 무언가 한가지 집중을 하면
그 주변에 그렇게 신경을 쓰는 타입은 아니다. 원래 그런게 아니라 나도 사람들을 만나면서
만들어진 거다. 그저 나는 깨달은 거지만 억지 노력으로 사람의 관계를 만들면 안되겠다는
게 사회생활에서 배운거다. 어떤때는 일이라는게 주어져 일하는 관계에 어긋나지 않도록
협력을 했지만 그 의무가 사라질때 또 헤어짐이라는 순간도 오게 된다.
어쩌면 내가 그 관계가 힘들어서 놓는 거도 몇번 있다. 그런데 정말 나를 생각하고 연락해주는
사람은 정말 몇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내가 그걸 바래서도 안된다.
그리고 일에 있어서는 나에게 정말 도움을 주려고 하고 이야기도 들어주려고 했던 분들은
다른 생활을 해도 나에게 인생 멘토가 되어 주었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런건 아닐거다. 나에게 선을 넘거나 무시하는 사람은 그렇게 기억은 하고 싶지 않지만
서로의 선을 지키면서 만나게 되고 그 관계가 유지 되었던 거만해도 인생에서도
귀한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곧 성장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만 아직 까지도 나의
그전 모습만 기억을 하는 분들도 있다. 지금은 보이지 않아도 나에게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는
감사함만은 간직하면서 살아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