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습작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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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콜릿 |
초콜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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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콜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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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생각하는 맛집 |
사람들이 올려 놓은 후기를 통해 맛집을 찾아가기도 한다. 나도 가족끼리 다른 지역에 맛집을 찾아가면
그렇게 찾는다. 우리는 맛집을 찾는다고 어떤 곳은 맛이 있지만 어떤 곳은 후기 평보다 음식 맛이 덜해
실망을 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그 집은 아웃이다. 하면서 다시는 그 맛집을 찾아가지 않는다.
티비에 광고에 나오는 맛집 처럼 사람들이 엄청 맛있다면서 하는 그런 맛집도 실제 찾아가면 사실상
그렇지도 않는 맛집들도 몇 집이 있다.
그래서 나는 어떤 맛집이 맛있는 집이냐고 하면 당연히 서비스 좋고 다시 생각나는 맛집이다. (너무 당연한건가)
내가 한번은 힘든 하루를 보낸 적이 있었다. 그때는 정말 입맛이 없고 힘이 빠지는 날도 있었다.
그래서 생각난 곳이 있어 들렀는데 알바 했을때 자주 찾던 떡볶이 포장 마차가 있다.
알바를 할때 간식이나 간단 요기로도 먹고 했었는데 할머니가 몇년째 장사를 하고 계신다. 그리고 떡볶이를 시키면 오뎅 국물도 같이 주셨다.
음식의 맛도 좋지만 정성을 담아 목 메이지 않게 챙겨주는 작은 행동이지만 그건 나에게
정말 힘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그런 집이 정말 맛있는 곳이라 생각한다.
동네 쪽으로 나오면 국수를 저렴하게 4500원에 하는데 그 이상으로 가격을 올리거나 하지 않는다.
요즘은 주변에 가면 6000원 하고 가격을 올리는 곳도 많은데 말이다.
하지만 매일 새벽에 육수를 끓이고 손님들이 따뜻하게 먹을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해 놓는다고 한다.
나는 그 국수집에 들르고 국물 육수에 마음도 편해 진다.
내가 대학생 시절 자주갔던 칼국수 집이 있는데 면을 직접 반죽하고 멸치 육수에 파만 넣은 칼국수 인데도 국물이 시원하고 맛있다.
내가 방황을 하던시기에도 함께한 곳이어서 일까. 한 분의 정성이 들어간 음식이었기에
그 맛집을 오래 기억에 남는다.
보통 전통 시장을 가면 간단한 분식 식사등 밖에서 먹을 만한 곳이 없을 때 찾곤 한다.
우리 엄마도 주 메뉴만 나오고 반찬이 없는 가게는 아쉬워 한다. 요즘은 간편식 으로도 자주 나오기 때문이다. 다음번에 찾아도 그런 맛집은 오래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집 주변에서는 그런 맛집을 찾을 수 있어 다행이다. 지금도 생각하면 나는 그 맛집을 다시 들르고 싶다.
결론. 배고플때 먹는 밥이 가장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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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커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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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성에 맞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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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mt에서 있었던 일 |
대학 첫 학기에 시작해서 OT와 MT를 하는 행사가 있었다. OT는 오리엔테이션이고
MT는 학기 중에 학과 선배들과 모여서 숙소 잡고 놀러가는거 였다.
그 시기에는 선배들이 후배를 기 잡는다고 무조건 다 같이 가야 한다고 이야기 했다.
그래서 1학년때는 가기 싫어 하는 사람도 같이 가야 했다. OT는 그때도 대학 생활
이라고 좀 어수선한 느낌이었다. 신입생 환영은 환영이라 이벤트는 준비하고 했다지만
새벽까지 술마시고 그런건 나는 하지를 못했다. 다른 사람들 음주를 할때 나는 그저
잠으로 넘어 갔다. 그리고 여름 학기 중 MT로 갈때는 학과 내에서 가는 행사 였다.
그때는 한 대학교 2학년때까지는 갔지 싶다. 장소는 남해였다.
매년마다 MT는 그 장소로 잡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놀러 가는 건 맞긴 하다.
선배들이 준비한 방게임도 있었고 요리 대회라고 각 조로 짜서 음식을 요리 한 뒤 순위를
메기기도 했다. 저녁에는 레크레이션 이라고 남학생하고 선배들이 여장을 하는 무대도 있었다.
레크레이션 중에는 조 끼리 연습해서 춤을 연습해서 보여주기도 하는 등 장기 자랑을 했다.
나는 학기 초반에 학교에서 합창으로 under the sea를 부른적이 있어 그걸 앞에나와서
부르는 걸로 했다. 하지만 중간에 삑사리가 났다. 나는 순간 분위기 조졌구나, 하고 멍해 있었다.
그때 한 선배가 앞에 나와서 춤이라도 춰보라고 했다. 나는 순간에 옆사람 한테 '싸우자' 하고
덤벼 들었다. 그때 다른 사람들이 웃고 했었다. 나는 뭐가 웃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한 분은 나에게 물총을 쏘았고 상황은 마무리가 되었다.
조 마다 상금을 주는 이벤트도 있었지만 우리조는 받지는 못했다.
저녁이 되어서 동네 마실을 나오는데 개 한마리와 동네 주민분이 산책을 하고 있었다.
나는 개를 보고 반가워서 손을 크게 흔들었지만 그 옆에 동네 주민이 같이 다가 와서
손을 흔들어 주는거였다. '아이고 인사성 이 참 좋네.' 하고 지나가셨다. 나랑 옆에 같이 다니던
학과 친구는 웃겨서 초토화가 되었다. 그리고 피곤 해서 그런지 그 날도 잠이 쏟아져서 음주 가무는
하진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어제 요리 하다 남은걸로 해서 한끼 해결 했다. 거기에 편의점이나
슈퍼마켓은 있지만 왠만해서 해먹을 재료는 챙겨야 한다. MT가 재미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 함께 하는 친구가 있어서 잘 보내다 왔다 정도 이다. 학교에서 그저 해주는 건
아니고 회비를 4년치 내야 했었다. (사실은 mt는 4년치 까지는 가지 않는다. 대학교 4학년 되면
졸업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 까지만 해도 선배들이 기만 잡는다고 생각했지
챙겨준다라는 건 생각하지 못했던거 같다. 코로나 생긴 이후로는 강제는 없고 사건 사고도
있었기에 그런 문화가 바뀐 생황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활동을 하고 나서는 학과
친구들과 어색한 느낌 없이 잘 지내게 된다는 장점은 있다.
그리고 나랑 같이 다닌 학과 친구와도 지금도 잘 지내고 있다. 아마 mt 때 만들어준 추억 때문에
시간이 지나도 오래 이야기도 할 수 있었던거 같다. 조장님이었던 그 선배 분도 지금은 학교 선생님
인데 잘 계시는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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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사가 원하는 답 나의답 |
나의 말투에서 회사에 대한 경험이 없구나 하는 티가 난다. 사실은 맞다.
주변에서도 너가 안 잘리려면 말은 잘 해야 할거야 하고 눈치를 주기도 한다.
분명 사회 생활에서의 문제만 아니면 나는 열심히라도 하려는 사람이었을거다.
자신이 목표가 있고 그게 회사와 잘 맞는다고 생각하면 오래 가기도 한다.
나보고 단순 업무나 몸으로 움직이는 일을 하라고 하지만 기간이 제한 되거나
그 일에서 마저 나는 동떨어져 행동한다. 몸으로 하는 일은 동작이 빨라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회사를 가기가 그렇게 어렵다고 하는데 회사에 다니지 못하는
사람도 막막하고 취직이 되고 나서도 적응해 나가기 위해 시험과 같은 삶일거 같다.
목적은 있으면 나에게 동기 부여라는게 있다. 내가 처음에 겪어본 일은 힘들어도
나중에는 내가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사라는 안정감과 나의 몸값을 키워주는 일 그렇게 생활하는데 보통
삶이라고 본다. 우리는 무언가 하나를 하는데 포기는 하지 말라고 한다.
바깥에서 회사가 아니어도 기관과 관련되면 꼭 나에게 부딪쳐 보라고 이야기 한다.
나도 접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실제 스스로도 그걸 극복해 내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내가 그걸 포기 하지 않고 임무 날짜까지만 마치면 나는 스스로
기관에서 배운걸 토대로 계획해 나갈 수 있는 게 장점인거 같다.
그건 내 생활 태도를 바꾸게도 했다. 몸으로 쓰는 일은 오래 하면 규칙이나 시간
패턴을 챙기게 되고 좋아하는 일도 균형 있게 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일이 나에게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고 나와 맞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완전 나와 전공이 다른게 아니라면 기회가 왔을땐 해보는거도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회사를 다니는 와중에도 삶을 기획할 수 있는 방법도 찾아야 한다.
회사를 다니는 중간에도 나중에 내가 좋아하는 거라도 마음껏 할 수 있는 시간을 위해
축적해 두는거다. 휴식과 취미는 그런 방향에서 의미가 있다.
사실은 작은데서 일을 시작하는게 맞기도 하다. 회사에서 보는 나의 모습은
어떤 걸까, 그래도 배우고 하다보면 결과나 답으로 나오겠지, 생각할 뿐이다.
하지만 나도 나만의 세상에서 좀 더 표현하고 몸이 좀 힘들더라도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그런 곳이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