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9일 월요일

창녕 부곡 병원 벽화 봉사(습작 16)

3월 09, 2026 0 Comments

 

창녕 부곡 병원 벽화 봉사 했던일


김소현(습작16)

대학교 1학년 시기는 학교 수업 외에 다른 부수적인 활동들도 하기도 했다. 
나중에는 졸업 준비하고 바쁠 시기라고 지도 교수님과 학과 선배들이 이야기 
하곤 했다. 그래서 교육 봉사를 하는데 60시간을 채워야 했다. 그래서 했던 일이
창녕에 있는 부곡 병원에서 일주일간 벽화 봉사였다. 학기 중에 했기 때문에
교수님과도 이야기 하고 일정을 잡아 두기도 했다. 교육 봉사라고 하면 학교에서
몇차시 방과 후 활동으로 수업을 해주는 거로 만 알고 있었다. 그때는 벽화 봉사도 
포함은 되어 있었구나 생각할 뿐이지  필요한거라면 참여 하기로 했다.

봉사를 하러 갈땐 세 분단으로 나누어서 한 팀은 시골 쪽에 벽화 봉사를 하러 갔다.
 그리고 내가 포함한 분단은 병원에 있는 큰 벽이 있는 곳에 벽화 봉사로 정해 졌다.
그리고 우리는 운동장 만한 큰 벽에서 벽화를 작업을 해야 했다.
벽화를 하기 전에는 물감이 묻을 수 있기 때문에 집에서 잘 안신는 신발을 신었다.
 그리고 작업복입고 모자도 써서 작업을 하게 되었다. 
내가 입은  작업복은 고등학생때 체육복으로 입었던 옷이었다.
벽화를 작업할때는 벽 사이즈 형태를 생각하고 어느 위치에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계산은 있어야 했다. 그때는 복학한 선배들도 있고 편입한 선배들도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벽화 봉사를 하는데 거들어 주는역할을 했다.

롤러라고 도구를 사용하는데 물감을 그림의 밑바탕 부터 색을 칠했다. 선배들이 알려줄때는 
롤러를 위에서 부터 밑으로 칠을 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그때는 일단 하라고 해서 했지만 
벽에 물감이 튀면서 얼굴이나 옷에 묻기도 했다. 병원에 있는 분들도 지나가면서 우리가 
작업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그리고 고생이 많다고 이야기도 하고 가신다.
우리는 벽화가 커서 그런지 한 3일은 벽화 바탕 칠만 계속 했다.
그러다가 우리 쪽과 근처에서 작업하는 분단도 번갈아 가면서 그리기도 했다.

우리가 작업을 하는 시간은 오후 6시 전까지라 점심 시간도 챙겨 먹으면서 작업을 했다.
그리고 시간도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우리 쪽에서 했던 벽화는 세분단 같이 모여서 
벽화 그림 작업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하다보니 그 큰 벽화도 완성을 할 수 있었다.
(나랑 학과 친구는 먼저  판을 깔아서 작업을 했기에 다음사람이  좀 더 편하게  한거 아니냐고 지금까지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
나는 학과 친구와 함께 완성된 벽화 사진을 찍어 남겼다. 그리고 집에 와서는
뿌듯하기도 하고 뻗어서 쉬었다. 지금은 사진 그때 사진을 잘 챙겨 놨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그 후로 학교 다니면서 봉사활동 기회가 있어 벽화 작업을 
하기도 했었다. 좀 더 경험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벽화 봉사는 동아리나 대학교 다닐때 1365라고 벽화 봉사을 같이 하는 단체와 
함께 가는 게 좋다. 학교내  동아리에 가입을 하거나 비영리 단체인 굿네이 버스랑
KTG 봉사단체에 활동하는 곳도 있다. 지금도 하는지는 모르겠다. 
지금은 지나보니 그런 활동을 할때도 좋은 때였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중에라도 그 시기에 사진들이 있는지 다시 찾아봐야 겠다. 


 p.s. 그림 활동을 할때 봉사 활동비를 받으면서 벽화 봉사를 하는 단체도 있었다.  
알바로 그런 거라도 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벽화는 작업할때   그리고 벽화  규모가   클때는 빔프로젝터를 켜고 
작업을 하기도 한다.  그러면 그 크기도  측정하면서 그릴 수 있다. 하지만 필수는 아니다.

2026년 3월 8일 일요일

MT에서 있었던 일 (대학교 1학년)

3월 08, 2026 0 Comments

 

학교 mt에서 있었던 일
학교  mt에서 있었던 일

대학 첫 학기에 시작해서  OT와 MT를 하는 행사가 있었다. OT는 오리엔테이션이고

MT는 학기 중에 학과 선배들과 모여서 숙소 잡고 놀러가는거 였다.

그 시기에는 선배들이 후배를 기 잡는다고 무조건 다 같이 가야 한다고 이야기 했다.

 그래서 1학년때는 가기 싫어 하는 사람도 같이 가야 했다. OT는 그때도 대학 생활

이라고 좀 어수선한 느낌이었다. 신입생 환영은 환영이라 이벤트는 준비하고 했다지만

새벽까지 술마시고 그런건 나는 하지를 못했다. 다른 사람들 음주를 할때 나는 그저 

잠으로 넘어 갔다. 그리고 여름 학기 중 MT로 갈때는 학과 내에서 가는 행사 였다.

그때는 한 대학교 2학년때까지는 갔지 싶다. 장소는 남해였다.


매년마다 MT는 그 장소로 잡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놀러 가는 건 맞긴 하다.

선배들이 준비한 방게임도 있었고 요리 대회라고 각 조로 짜서 음식을 요리 한 뒤 순위를 

메기기도 했다. 저녁에는 레크레이션 이라고  남학생하고 선배들이 여장을 하는 무대도 있었다.

레크레이션 중에는 조 끼리 연습해서 춤을 연습해서 보여주기도 하는 등 장기 자랑을 했다.

나는 학기 초반에 학교에서 합창으로 under the sea를 부른적이 있어 그걸 앞에나와서 

부르는 걸로 했다. 하지만 중간에 삑사리가 났다. 나는 순간 분위기 조졌구나, 하고 멍해 있었다.

그때 한 선배가 앞에 나와서 춤이라도 춰보라고 했다. 나는  순간에 옆사람 한테 '싸우자' 하고 

덤벼 들었다. 그때 다른 사람들이 웃고 했었다. 나는 뭐가 웃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한 분은 나에게 물총을 쏘았고 상황은 마무리가 되었다.

조 마다 상금을 주는 이벤트도 있었지만 우리조는 받지는 못했다. 


저녁이 되어서 동네 마실을 나오는데 개 한마리와 동네 주민분이 산책을 하고 있었다.

나는 개를 보고 반가워서 손을 크게 흔들었지만 그 옆에 동네 주민이 같이 다가 와서 

손을 흔들어 주는거였다. '아이고 인사성 이 참 좋네.' 하고 지나가셨다. 나랑 옆에 같이 다니던

학과 친구는 웃겨서 초토화가 되었다. 그리고 피곤 해서 그런지 그 날도 잠이 쏟아져서 음주 가무는 

하진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어제 요리 하다 남은걸로 해서 한끼 해결 했다. 거기에 편의점이나 

슈퍼마켓은 있지만 왠만해서 해먹을 재료는 챙겨야 한다.  MT가 재미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 함께 하는 친구가 있어서 잘 보내다 왔다 정도 이다. 학교에서 그저 해주는 건 

아니고 회비를 4년치 내야 했었다. (사실은 mt는 4년치 까지는 가지 않는다. 대학교 4학년 되면

졸업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 까지만 해도 선배들이 기만 잡는다고 생각했지

챙겨준다라는 건 생각하지 못했던거 같다. 코로나 생긴 이후로는 강제는 없고 사건 사고도 

있었기에 그런 문화가 바뀐 생황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활동을 하고 나서는 학과 

친구들과 어색한 느낌 없이 잘 지내게 된다는 장점은 있다. 


그리고 나랑 같이 다닌 학과 친구와도 지금도 잘  지내고 있다. 아마  mt 때 만들어준 추억 때문에

시간이 지나도 오래 이야기도 할 수 있었던거 같다. 조장님이었던 그 선배 분도 지금은 학교 선생님

인데 잘 계시는 지 모르겠다.

2026년 2월 27일 금요일

회사가 원하는 답 나의 답

2월 27, 2026 0 Comments

 

회사가 원하는 답 나의 답
회사가 원하는 답 나의답

나의 말투에서  회사에 대한 경험이 없구나 하는 티가 난다. 사실은 맞다.

주변에서도 너가 안 잘리려면 말은 잘 해야 할거야 하고 눈치를 주기도 한다.

분명 사회 생활에서의 문제만 아니면 나는 열심히라도 하려는 사람이었을거다.

자신이 목표가 있고 그게 회사와 잘 맞는다고 생각하면 오래 가기도 한다.

나보고 단순 업무나 몸으로 움직이는 일을 하라고 하지만 기간이 제한 되거나

그 일에서 마저 나는 동떨어져 행동한다. 몸으로 하는 일은 동작이 빨라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회사를 가기가 그렇게 어렵다고 하는데 회사에 다니지 못하는 

사람도 막막하고 취직이 되고 나서도 적응해 나가기 위해 시험과 같은 삶일거 같다.

목적은 있으면 나에게 동기 부여라는게 있다. 내가 처음에 겪어본 일은 힘들어도

나중에는 내가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사라는 안정감과 나의 몸값을 키워주는 일 그렇게 생활하는데 보통

삶이라고 본다. 우리는 무언가 하나를 하는데 포기는 하지 말라고  한다.

바깥에서 회사가 아니어도  기관과 관련되면 꼭 나에게 부딪쳐 보라고 이야기 한다.

나도 접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실제 스스로도 그걸 극복해 내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내가 그걸 포기 하지 않고 임무 날짜까지만 마치면 나는 스스로 

기관에서 배운걸 토대로 계획해 나갈 수 있는 게 장점인거 같다.


그건 내 생활 태도를 바꾸게도 했다. 몸으로 쓰는 일은 오래 하면 규칙이나 시간 

패턴을 챙기게 되고 좋아하는 일도 균형 있게 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일이 나에게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고 나와 맞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완전 나와 전공이 다른게 아니라면 기회가 왔을땐 해보는거도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회사를 다니는 와중에도 삶을 기획할 수 있는 방법도 찾아야 한다. 

회사를 다니는 중간에도 나중에 내가 좋아하는 거라도 마음껏 할 수 있는 시간을 위해 

축적해 두는거다. 휴식과 취미는 그런 방향에서 의미가 있다. 


사실은 작은데서 일을 시작하는게 맞기도 하다.  회사에서 보는 나의 모습은 

어떤 걸까, 그래도 배우고 하다보면 결과나 답으로 나오겠지, 생각할 뿐이다. 

하지만 나도 나만의 세상에서 좀 더 표현하고 몸이 좀 힘들더라도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그런 곳이면 하는 바램이다.

2026년 2월 22일 일요일

큰엄마의 반찬 (습작15)

2월 22, 2026 0 Comments

 큰엄마의 반찬 

김소현 (습작15)

어렸을때 명절을 지내러 친척집에 가면 먼저 찾는 곳은 큰어머니가 운영하는 반찬가게 였다.

늘 지금도 명절때마다 찾아 뵈면 큰어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반겨 주신다. 

큰어머니가 운영하는 가게는 마을 시장이 있는 근처이다. 명절때 마다 시장안에 사람들도 

북적이곤 했다.   큰어머니 가게 안에 들어서면 반찬 종류도 여러가지가 있다.

가게에 들렀다 친척집으로 가서 이야기를 나누다 점심 또는 저녁을 먹는다. 그리고 

큰어머니가 만든 김치, 된장, 양념 꽃게, 물김치, 창란젓 등 반찬과 국을 밥상에서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정말 맛있게 반찬과 같이 밥을 먹었다. 우리는 먹는 와중에

사촌이 '저는 김치와 밥만 먹어도 맛있어요.' 라고 이야기 하기도 한다. 그러다 

밥을 더 먹고 싶다고 이야기 하면   큰 엄마는 '오야' 하면서 밥을  더 퍼주기도 하셨다.

나도 반찬 중에서 김치도 있지만 창란젓을 맛있게 먹었다.  기본 반찬이라고 해도

한정식으로 이렇게 맛있는 반찬을 먹을만한 곳은 거의 없다고 본다.

나도 생각해 보면 따끈한 밥에 큰어머니 반찬만 있어도 다른거는 필요하지 않다고 본다.

 명절이 되는 날에는 큰어머니가끓인 소고기무국도 있었다. 

소고기무국도 간 맞추기가 어려운데 그걸 해내신다. 그래서 설날 아침은 속도 편하고 든든했다. 

그렇게 큰어머니도 몇년간 반찬 장사를 하셨다. 그리고 한 20년 이상을 가게를 하시고 

지금은 가게일을 하지 않으신다. 그래도 매번 명절에는 반찬과 국을 만들어 주신다.

우리는 집에 와서 들고온 큰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반찬을 식사 시간에 먹었다.

'엄마 큰엄마는 반찬을 참 잘하는거 같아요.' , '그럼  몇십년 경력이신데.'

정말 반찬 가게를 하거나 반찬을 지금도 만들고 하는걸 보면 큰어머니는 정말

부지런한 분이시다.  나는 반찬 비슷하게는 만들어보고 싶은데 생각만큼 되지는 

않는다. (예전에  파를  썰어도  파 몇센치정도 썰까요 하고 물어본 사람이다) 그 일도 힘든일이겠지만  큰어머니는 우리가 밥을 먹고 있는 모습에서 보람을 

느끼진 않으셨을까. 저번 추석때는  반찬을  싸온거랑 소고기 국을 먹는데  큰어머니의  모습이 생각이 난다.


2026년 2월 18일 수요일

된다 된다 나는 된다

2월 18, 2026 0 Comments

된다 된다 나는 된다
된다 된다 나는 된다

 된다 된다 나는 된다

나는 과연 할 수 있을까, 나는 그 물음표를 달지만 아직 해결할 방법을 찾지는 못했다.

나는 평소에도 생각을 하면 의문을 자주 가진다. 그게 좋을 수도 있지만 과하면 

나의 내면 부정으로 자리 잡는다. 부모님은 그런 나에게 이 책을 권유해 주었다.

그래서 책을 펼쳤는데 무조건 할 수 있다의 과장된 표현은 아니다. 내 안에 있는 

힘을 믿어라 정도의 말을 전해 준다. 그리고 내가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면 

분명히 긍정적 결과로 돌아 오게 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나는 시도는 해보지만 

늘 긍정의 결과를 기대하진 못했다. 그리고 결과를 기다리는 와중에도 기대 하기 보다

그렇다고 실망하지 않는 적당한 선 정도만 생각했던 거 같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사실은 나는 부정의 마음이 더 컸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런데 실제로 내가 한다고 생각해서 시작한거면 그게 되는 경우들도 있었다.

그걸 아직 내 안에서 깨달음을 얻지 못했을 수도 있었을거 같다. 그때는 내가 

원하던 이상향이 있었다.그걸 놓지 않고 쭉 지켜왔기 때문에  

다음 일을 할때가 편한점도 있다.

나는 나를 증명을 한다는게 타인에 의한 기대감과 부응을 찾고 있었던거 아니었을까

그리고 나 스스로도 할 수 있다는 자부심도 갖고 있어야 한다는걸 책을 통해 

알아가게 된다.   그 긍정적 시너지를 스스로 연상하고 되뇌이고 하면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걸 여러 아티스트 분들도 인터뷰로 이야기하는 

영상도 보았다.  생각도 하지만 실천으로 이어지면 그건 더 좋은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저는  어리버리에서 시작을 했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2026년 2월 15일 일요일

시선에서의 자유

2월 15, 2026 0 Comments

시선에서 느낀 나의 자유
시선에서 느낀 나의 자유

 시선에서 느낀 나의 자유

나는 학창 시절 부터 표현의 자유가 없었다. 표현을 못하는 건 아니었다. 
학교 다닐때는 사회 생활로 부터 친구와 유대 관계를 형성하는 방법을 잘 몰랐다.
도움을 주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나는 거기서 부터 어떻게 나아가야 하지 하고 
고민의 연속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나는 나의 가족에게도 그런 말을 할 수 가 없었다.
내가 어떻게 성격을 변화 하고 싶었지만 나는 동아리로 만난 친구들과는 소통을 해도
반 안에서는 그걸 믿어주거나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은 없다. 나는 변화할 수 없으면
다른 친구들이 관심을 주지 않아도 그대로 나아가기로 결심 했다. 
그건 학교를 벗어나 사회 생활을 하고 나서도  성향이 남아 있어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 (나는 생각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대학 생활때는 좋은 친구도 
있어 같이 이야기도 하고 사람을 믿는다는데에 마음은 열렸을 뿐이다.

물론 내가 어디 기관에 지원해서 일을 하더라도 꼭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건 
아니었다. 다들 성향이 다르고 기초 일 부터 시작을 하면 실수로 상처는 받아도
지금 생각해서 한 그분들의 말들이 나에게 도움이 되었구나 하는 걸 느낀다.
어떤 사람은 너는 이 일이 안 맞으니 다른 데 알아보라고 하기도 한다. 그건 
내가 정말 할 수가 없는 일이었을까. 그래서 나는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때 되면 그래도 부모님은 안 맞으면 다른 일을 하면 되지 하고 이야기는 해주신다.
그러다 어떤 일을 하면서도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았을때 그때도 눈물이 났다.
나는 그동안은 왜 일이 힘들게만 느껴졌던 걸까 나는 일이 힘든게 아니었다.
사람들과 소통하는거 그거만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눈치를 준 사람도 사실은 나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기도 한다.
 (그런 사람과 대면할때는 좀 힘든 부분이긴 하지만 말이다.)

나는 사람들 안에서 일하는 건 어렵다. 하지만 내가 주도적으로 밖에 나가고 
그리고 내 할일을 할때 그런 일이 나에게는 맞았다. 나는 아직도 사람들 속에서 
지내는 방법은 모른다. 하지만 어느날 맑은 하늘을 볼때 쉬는 날은 정말 화창하다.
지금은 그 시기때 보다 마음은 편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도 어떤 방법보다 나 스스로 느끼고 깨달을 때 더 와닿는다.

'이게 바로 자유구나'

지금은 남들의 시선에서 나 자신이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건 없었다.
내가 표현 하는 대로 상상하는 대로 가면 되는구나 그걸 최근에 느끼게 된다.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되니 몸도 아팠던게 좀 더 낫다. 마음에서도 내 건강이
자리 잡구나 하고 느꼈기 때문이다. 

엄마의 친구분도 그렇게 이야기 한다. '말을 생각을 너무 깊게 하지 않아도 되
네가 이렇게 생각하면 이렇게 될 수도 있고 저럴수 도 있는거야'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분은 몇 없지만 감사하게 생각 될 뿐이다.
사실 그게 마음이 편하다.

2026년 2월 9일 월요일

보고 싶어지는 사람들(습작14)

2월 09, 2026 0 Comments

보고싶어지는 사람들

 사회 생활 연결 관계

김소현(습작14)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무심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어째서 일까 나와 필연 관계가 아닌

사회 의무로 2차적으로 만나는 분들은 그 의무가 끝난 시점에서 헤어지는 시기도 온다.

그러면 우리는 그 필연관계에서 잠시 멀어진다.  그리고 각자의 역할에서 자신의 의무를 

하고 있을때 어느 시점에서 어떤 시기와 상관없이 또 만나지게 된다. 

나는 그때 만나면 기쁘다고 서로의 안부를 묻기도 한다. 마음의 깊이가 깊은 사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시간있다고 자주 연락하는 사이도 아닌데 말이다. 나는 무언가 한가지 집중을 하면 

그 주변에 그렇게 신경을 쓰는 타입은 아니다. 원래 그런게 아니라 나도 사람들을 만나면서 

만들어진 거다. 그저 나는 깨달은 거지만 억지 노력으로 사람의 관계를 만들면 안되겠다는

게 사회생활에서 배운거다.  어떤때는 일이라는게 주어져 일하는 관계에 어긋나지 않도록

협력을 했지만 그 의무가 사라질때 또 헤어짐이라는 순간도 오게 된다.

어쩌면 내가 그 관계가 힘들어서 놓는 거도 몇번 있다. 그런데 정말 나를 생각하고 연락해주는

사람은 정말 몇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내가 그걸 바래서도 안된다. 

그리고 일에 있어서는 나에게 정말 도움을 주려고 하고 이야기도 들어주려고 했던 분들은

다른 생활을 해도 나에게 인생 멘토가 되어 주었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런건 아닐거다. 나에게 선을 넘거나 무시하는 사람은 그렇게 기억은 하고 싶지 않지만 

서로의 선을 지키면서 만나게 되고 그 관계가 유지 되었던 거만해도 인생에서도 

귀한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곧 성장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만 아직 까지도 나의 

그전 모습만 기억을 하는 분들도 있다. 지금은 보이지 않아도 나에게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는

감사함만은 간직하면서 살아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