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리듬춤김소현 (습작) 나는 춤을 배운적은 없다. 엄마 따라 동네에 방송댄스 강연 하는 곳에 가본적이 있지만 음악 소리가 나자마자 그곳에서 뛰쳐나오기도 했다. 엄마는 왜 그리 겁이 많냐 하면서 오라고 했지만 나는 먼발치에서 발을 떼기가 힘들었다. 학교에서도 발표하는거도 떨리던 나였다. 학교에서 학예 발표회때 안무에 맞춰 춤을 추는 친구들 모습을 보면 선망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특히 춤도 잘 추는데 공부까지 잘 하는 사람은 학교에서 인기 짱이기도 하다. 음악 리듬이 나오면 다른 사람들은 신나면서 하고 있는데 나는 멍석 처럼 가만히 있기도 했다. 생활하면서 춤을 해볼 일이 있을까, 그러던 차에 고등학생 들어가면서 동아리에 가입을 하며 신입 환영회로 춤을 준비 해야 했다. 나는 두렵기는 하지만 친구는 우리끼리 하는거니깐 겁먹지 말고 하자고 말했다. 그때 나는 친구 두명과 함께 학교 점심 시간을 마치고 쉬는시간에 모여서 연습 해보았다. 춤 제목은 오렌지 카라멜의 '마법 소녀' 였다. 처음 안무를 해보는데 영상을 보고 따라하는거 부터 시작을 했다. 그리고 학교 마치고 쉬는 시간에 연습해 보기도 하고 집에 가서도 영상을 틀어 놓고 해보기도 했다. 춤을 할 때는 몸 동작을 크게 해야 한다고 해서 같이 연습하면서 맞춰 보기로 했다.. 하루는 각자 집에서 연습을 한걸 영상보고 따라했는데 열심히는 했는데 자기가 맡은 파트에 집중하다보니 처음에는 우리가 맡은 부분만 춰서 안무가 따로 놀았다. (단 영상으로 찍어서 다시 봤을 때 내가 동작이 한 박자 느리다. 실제 체감 상 몸이 삐거덕 면서 했던 거 같다. )그래서 보충해서 서로 봐주기도 했다. 신입생 환영회때 나는 떨렸지만 음악에 맞추어 춤을 췄다. 하지만 춤을 추는 과정에서 처음의 긴장보다 덜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춤이 끝나고 동아리 선배들은 박수를 쳐주었다. 음악 제목 처럼 나는 마법 소녀가 된 기분이었다. 다른 친구들도 준비한 춤도 보면서 환영회에서 서로 이야기도 하고 좋은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후로는 사실 학교생활이나 사회 생활을 하면 개인기나 장기자랑을 할때 해야 되는 부분도 있었다. 그땐 간단한 안무라도 준비해서 연습을 하곤 했다. 지금도 무대에 서서 춤을 추기 전에는 긴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한번의 기회가 또 다른 기회가 될때 준비되서 하게 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대학을 마치고 나서는 운동을 한다고 에어로빅이나 줌바댄스 하는데 운동교실에 다니고 했었다. 에어로빅은 2달 쯤 되니 몸무게 때문인지 발이 퉁퉁 부어서 2주간 병원에 다니곤 했다. 지금은 개별적으로 가끔씩 연습 했을때 몸도 유연해지고 스트레스도 풀어진다는걸 느낄 수 있었다. 복잡한 안무는 아직 잘 하지는 못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음악을 틀면서 리듬감도 느끼고 않더랃 마음의 해방감을 느끼는 중이다. 춤을 잘하는게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보이지 못한 나만의 리듬이 있다. 그리고 춤을 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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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순하게 생각하기 |
저는 생각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말을 하다가도 이러이러 해서 그렇다
라고 하면 '아~' 하고 그 다음말은 생각하지 않을때가 종종 있습니다. 저도 원래는
듣는 편에 익숙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생각을 하다보니 답은 늦게 나오기도 하고
그럴때도 있지요.
지금은 말을 듣고 공감정도 하고 맞춰준다 라고 생각하지만 말을 어떻게
유연하게 말할 수 있을까 거기에 대한 말은 생각하지 못할때가 있었습니다.
그럴때마다 학원 선생님은 '너가 고지식 해서 그렇다' 라고 말한적도 있습니다.
저의 그런 성향은 유대 관계를 형성할때도 사실은 좀 어려웠던걸로 알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초등학교때 동창을 만나면서 했던 이야기가 '우리 일본 여행을 한번
가봐야 한다.' 라고 할때 내가 '어 맞다' 하고 이야기 했지만 그 다음으로는 말이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이해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 후로도 연락이 끊겨 만나지 못함
그 후로 저는 대화 하는데 컴플렉스가 걸린거 같습니다.)
저는 사회생활이 부족해서 그런거다 하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지요. 어느날은 빵집에서 잠깐 일을 해본적 있는데 빵 모양이 툭 튀어나온 적도 있었습니다. 저는 이때 '어 이거 어떻게 해야 하죠?'
하고 물어보기도 했는데 답은 간단했습니다. 그러자 직원분이 '어머 어떻하긴 먹어야지~'
그리고 튀어나온 부분을 떼어 먹었습니다. 의외로 단순한 대답이었습니다.
저는 어떻게 하지 고민하며 생각하던걸 단순히 한 말에 저도 깨달은게 있었던거 같습니다.
사람들과 대화는 해보면서 해답을 얻는거 였습니다.
요즘은 어떻게 할까 생각을 많이 하는거보다 '하면된다'라고 조언을 듣는게 많아서 공감이
되기도 합니다. 방금 영상을 보는데도 삼성 이건희 회장님도 다른 사람들이 안될거다 하고
생각하는걸 내가 확신이 있으면 하면 된다 라고 이야기 합니다. 애플 컴퓨터 회사 다니는
외국인 이야기도 들으면 해야 될땐 마음이 끌리는대로 자신의 직감을 믿으라고 합니다.
저는 아직 그런 경험이 자주 필요하겠구나 생각도 듭니다. 울 엄마도 내가 고민이 많아지고
생각에 빠져 있으면 '뭔 생각을 그리하냐 밥먹을 땐 밥먹는데 집중해라 .' 하고 이야기 합니다.
그런 생각도 도움이 될때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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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듬의 무게 |
사실 저는 힘듬의 무게에 대해 생각하면 저의 관점에서 볼때만 느끼지
다른 사람이 기분을 느낀다에 생각을 하진 못했습니다. 원래 다들 자신을
우선으로 챙기는 게 당연 합니다. 저도 삶에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은
마음이 먹먹할때도 있었습니다. 저는 저에게만 일어나는 부분에 대해
마음의 무게만 더 해갔을 뿐입니다. 제가 쿠팡 알바를 갔을때 코로나가
지나간지 1년이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일을 하는 도중 만난 한분은
미용실 일을 차리셨는데 가게 운영 부담이 되자 쿠팡 알바를 했다고 합니다.
거의 대부분은 투잡으로 하는 분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는 선생님 한분도 학원 운영하지만 가장이니 일은 계속 해야 겠고
하며 한숨을 내쉬곤 했습니다. 저는 그때 다 각자의 어려움을 안고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나의 상태와 비교했을때 주어진 삶이
나은 선택이고 내가 가진 일을 할 수 있다는게 좋은 거 였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건 나의 시점에서 타인의 시점으로 갔을때 나의 삶을 더 집중할 수 있는게
감사하다는 걸 깨닫습니다. 항상 기운이 없어질때 마다 기억을 해야 겠습니다.
힘듬의 무게는 각자 하나씩 가지고 있지만 타인의 삶을 너무 비교만 해도 좋지는 않습니다.
잠시 하늘을 올려다 보고 풀꽃 냄새를 맡으며 맑은 공기가 있는 자연이 숨쉬는곳
그곳에 가서 마음을 가다듬고 정갈해 봅니다. 그리고 나만의 목표도 세우는 거 잊지말기
| 블로그 상위 노출 |
현이의 감성 로그
블로그 글을 쓴지는 9년 정도 되었지만 실제 블로그를 사용한 시기는 고등학교 1학년때
였습니다. 그때 친구와 대화 한다고 글도 올리고 댓글도 달던 시기였습니다.
거의 그 시기는 싸이 월드가 네이트로 바뀌는 기점이었던거 같습니다.
페북이나 인스타그램으로 폰 안에서 놀던 시기이기 전에 컴퓨터로 커뮤니티가
각자 하나씩 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저도 블로그는 어떻게 쓰는지
모르지만 갖고는 있었습니다. 저의 주변 친구들은 블로그로 만화 그림을 올리기도
했던거 같은데 저도 몇개 올린적이 있습니다. 그러다 생활해 오다 보니
블로그로 sns홍보를 할 수 있다는 공고를 통해 참여해 보기도 하고 글을 어떤 방향으로
잡을지 계속 보고 쓰기도 하고 그랬던 거 같습니다.
블로그는 사진 글이 주 위주이기 때문에 쉽게 따라하고 방법을 익혔던 거 같습니다.
그리고 제 블로그는 몇년 이상 하다보니 제가 수정과정에서 저품질도 걸리고
인터넷에 검색을 해봐도 노출이 안되는 시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글자를 좀 더 늘려보거나 이모티콘을 지우는 등 몇번 손을 보기도 했습니다.
물론 제가 하는 방법이 다 맞는건 아니였습니다. 하지만 글의 양과 질을 따져서
수정을 다시 하다보니 위 사진과 같이 노출이 되곤 합니다. 다만 준 상위 노출이다
보니 3가지 이상 단어는 써야 나올까 말까 합니다.
이전에는 키워드와 검색 순위에 의해 글쓰기 공략을 늘리곤 했었습니다.
하지만 오래 된 블로그는 2020년도쯤 만들어진 네이버 인플루언서 블로거 만큼
노출이 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요즘은 인스타 그램이 생겨서 그런지 상위 노출이
그렇게 의미 있지는 않은거 같아요.)
그래서 꼭 좋은점이라고 하면 좋은건 맞지만 이런 기능이 있었다 정도만 이야기 하려 합니다.
그래도 어쩌다 검색 상단에 노출되어 유입하는 사람들도 있을 순 있습니다.
예전에 페북이나 유튜브가 생기면 네이버 블로그 운영이 안된다는 말도 있었던거 같은데
네이버 블로그도 몇가지 기능과 앱이 사라지긴 했지만 블로그 자체는 유지 하고 있습니다.
그저 그때의 기억은 추억으로만 간직하려구요. 꾸준히 쓰다보면 또 달라질거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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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콜릿 |
초콜릿
김소현(습작17)
어릴 때부터 좋아하는 과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어딜 가도 흔한 그 이름은 초콜릿이다.
초등학생 때는 초콜릿과 초콜렛 이름을 헷갈려 하곤 했다. 그때는 나는 발음을 하기 편하게
초콜렛이 맞는 말이라고 믿고 있었다. 나중에 국어 시간 외래어 공부를 하다 보니 초콜릿이 맞는
표기 이구나 하고 알게 되었다. 고등학생 때가 되면 한창 맛있는거를 먹고 싶어 할 때
초콜릿은 매우 유혹적 이었다. 그래서 학교 쉬는 시간만 되면 한번씩 사먹던 몽쉘도
생각이 난다. 초콜릿은 어색한 친구 사이에 표현을 하고 싶을 때 사다 주고 말문을 트이게
해주었다. 그 만큼 의사소통으로도 쓰였던 연결고리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그림을 배우거나 공부를 할때 단게 항상 땡기곤 했다. 물론 맛은 행복하다.라고 표현해 본다.
예전에 대학 시절에 학과 친구와 가보고 싶었던 카페로 가서 먹었던 코코아 라떼를 먹은적 있다.
그 위에는 마시멜로우가 들어있어 은은한 단맛에 홀리기도 했다.
그럴때는 양치질도 잘 해둬야 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에는 단걸 너무 많이 먹은 걸 아닐까
몸무게를 쟤보았는데 이미 몸무게가 더 나가는 거였다.
이때 나는 초콜릿을 먹고 싶었던게 아니라 초콜릿을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고 싶어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렇다고 나는 초콜릿 외에 시리얼 또는 캐러멜 등 당도가 높은건
또 잘 먹지 않는다. 그러다 지나다보면 단게 물리는 때도 있어 잠시 당을 멀리 할 때도 있다.
그러면 어느새 생활하다보니 초콜릿을 찾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전만큼 초콜릿이나
다른 단거 과자를 찾지 않는 편이다. 한동안 먹지 않는 단거를 먹더니 이전보다 나온
살집이 후회를 남긴다. 그래서 1-2주에 한번 정도만 먹기로 약속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당도 낮은 초코바 하나를 아침에 먹고 밥을 안먹는 다이어트도
있다고 한다. 그게 되는 사람은 되겠지만 나는 거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원래 밥따로 후식 따로 아니겠는가) 도서관 같은데 가면 졸리고 집중이 되지 않을때
먹으면 그거는 괜찮다. 어떤 거든 과하면 좋지 않고 적당한 게 중요하다.
위에 사진은 우리 동네에 있는 초콜릿 카페 이다. 가격대가 있는 편인데 몇가지 종류의
초콜릿이 진열되어 있다. 발렌타인데이나 빼빼로 데이 날만 되면 꽃다발과 함께 사가는 사람들도
볼 수 있다. 나는 카페 모카가 초콜릿을 넣은 커피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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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생각하는 맛집 |
요즘은 맛집을 고르려면 별점과 리뷰 순위가 높은 집을 찾게 된다. 카카오 리뷰나 네이버 리뷰 검색등
사람들이 올려 놓은 후기를 통해 맛집을 찾아가기도 한다. 나도 가족끼리 다른 지역에 맛집을 찾아가면
그렇게 찾는다. 우리는 맛집을 찾는다고 어떤 곳은 맛이 있지만 어떤 곳은 후기 평보다 음식 맛이 덜해
실망을 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그 집은 아웃이다. 하면서 다시는 그 맛집을 찾아가지 않는다.
티비에 광고에 나오는 맛집 처럼 사람들이 엄청 맛있다면서 하는 그런 맛집도 실제 찾아가면 사실상
그렇지도 않는 맛집들도 몇 집이 있다.
그래서 나는 어떤 맛집이 맛있는 집이냐고 하면 당연히 서비스 좋고 다시 생각나는 맛집이다. (너무 당연한건가)
내가 한번은 힘든 하루를 보낸 적이 있었다. 그때는 정말 입맛이 없고 힘이 빠지는 날도 있었다.
그래서 생각난 곳이 있어 들렀는데 알바 했을때 자주 찾던 떡볶이 포장 마차가 있다.
알바를 할때 간식이나 간단 요기로도 먹고 했었는데 할머니가 몇년째 장사를 하고 계신다. 그리고 떡볶이를 시키면 오뎅 국물도 같이 주셨다.
음식의 맛도 좋지만 정성을 담아 목 메이지 않게 챙겨주는 작은 행동이지만 그건 나에게
정말 힘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그런 집이 정말 맛있는 곳이라 생각한다.
동네 쪽으로 나오면 국수를 저렴하게 4500원에 하는데 그 이상으로 가격을 올리거나 하지 않는다.
요즘은 주변에 가면 6000원 하고 가격을 올리는 곳도 많은데 말이다.
하지만 매일 새벽에 육수를 끓이고 손님들이 따뜻하게 먹을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해 놓는다고 한다.
나는 그 국수집에 들르고 국물 육수에 마음도 편해 진다.
내가 대학생 시절 자주갔던 칼국수 집이 있는데 면을 직접 반죽하고 멸치 육수에 파만 넣은 칼국수 인데도 국물이 시원하고 맛있다.
내가 방황을 하던시기에도 함께한 곳이어서 일까. 한 분의 정성이 들어간 음식이었기에
그 맛집을 오래 기억에 남는다.
보통 전통 시장을 가면 간단한 분식 식사등 밖에서 먹을 만한 곳이 없을 때 찾곤 한다.
우리 엄마도 주 메뉴만 나오고 반찬이 없는 가게는 아쉬워 한다. 요즘은 간편식 으로도 자주 나오기 때문이다. 다음번에 찾아도 그런 맛집은 오래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집 주변에서는 그런 맛집을 찾을 수 있어 다행이다. 지금도 생각하면 나는 그 맛집을 다시 들르고 싶다.
결론. 배고플때 먹는 밥이 가장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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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커 사진 |
스티커 사진 추억 일상
요즘 유행하는 네컷사진찍기 스튜디오 가 있기 전에 스티커 사진 셀프 스튜디오가
있었다. 고딩 때 친구들이 여름 방학때 친구와 모여서 우리집 주변 상가 있는 곳에서
같이 놀자고 나왔었다. 나는 친구와는 잘 놀아본 기억은 없다. 하지만 나도
끼워주기에 같이 따라 나섰다. 그때는 비가 많이 오는 날이기도 했다.
우리는 밥 메뉴를 통일을 해서 같이 '선영이가 만든 파스타' 집에 갔다.
그때 가게 이름도 독특해서 기억을 하고 있다. 사실은 체인점 이다.
그때는 파스타를 하나 주문하면 세트로 나오기도 했는데 빵 + 파스타 + 아이스 크림
빙수 이렇게 해서 나왔다. 그때는 봉골레 파스타 기본을 시켰는데 너무 매웠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입가심으로 아이스크림 빙수가 메뉴에 있는게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거의 보통 집에서는 파스타를 잘 먹지 않기에 그렇게 나온 파스타도 맛있게 먹었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그 다음은 어디 갈까 하며 상가 쪽을 돌아 다녔다.
그리고는 함께 스티커 사진 기계 있는 스튜디오로 갔다. 그때는 나는 처음 보는
기계에 신기하게 보았다.
내가 원하는 포즈를 취하고 카메라가 찍힐 때 마다 손동작 위치 바꾸기 등 다양한
모습을 찍어보았다. 그건 지금의 셀프 촬영 스튜디오와 비슷하다. 사진을 다 찍고
나면 그 다음 꾸미기를 했는데 내가 있는 사진을 꾸미기도 하고 서로 각자 꾸며주기
나면 그 다음 꾸미기를 했는데 내가 있는 사진을 꾸미기도 하고 서로 각자 꾸며주기
해서 글씨랑 스티커를 뽑으며 그렇게 놀았다. 사진이 인쇄가 되자 같이 꾸며진 사진을 보고
서로 몇 개로 나눌까 하며 이야기하는 시간도 가졌다.
우리는 서로 누군가 스티커 사진을 인터넷에 유포를 하면 절교를 하자면서
그렇게 철저히 약속을 했다. 나는 그 스티커 사진을 평소에 추억용 으로 남기는 노트에
붙여 놓았다. 졸업을 하고 나서도 친구와도 만나게 되면 스티커 사진을 찍으러
다녔다. 스티커 사진은 꾸미는데 눈을 좀 더 크게 만든다 던지
뽀샵 (밝게 나오는거)을 하는 등 보정도 해주어서 나오기도 했다.
친구는 스티커 북까지 사서 모으고 있었다고 한다. 나에게도 좋은 추억 거리가
생겨서 다행이기도 했다. 그리고 스티커 사진 기계가 지금은 없더라도
거리에 네컷 사진 셀프 스튜디오가 주변에 보인다. 스티커 사진을 찍을때
기억에 남는 건 글자로 '바보' 이렇게 적어 놓았는데 'ㅇㅇ 너임' 이러고
친구가 화살표로 넣은 거도 있었다. 요즘은 스마트 폰 사진으로도 편집하는
사진 꾸미기 앱도 있다. 이전엔 왜 이게 유행할까 싶다가도 셀프 사진관으로
사진 꾸미기 앱도 있다. 이전엔 왜 이게 유행할까 싶다가도 셀프 사진관으로
다시 돌아온걸 보면 역시 유행은 돌고 돈다. 하고 생각할 따름이다.
ps. 후기글은 올려도 사진은 올리지 않았으니 이정도는 괜찮은거 아닌가요.
사진을 찍고 나서는 베스킨 라빈스에서 더블킹으로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
비가 오는날이었는데 친구가 내가 사준거니까 그거 다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집 가면서 먹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감기 걸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