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31일 수요일

봄과 같은 소녀

12월 31, 2025 0 Comments

봄과 같은 소녀
봄과 같은 소녀

 어느 한 동백 나무에 햇살이 스며 든다. 지금 동백은 계절을 모르고 피는 꽃 같다.

햇살이 동백 나무에 비추는거 처럼 내 볼에 닿을때 따뜻한 손길이 나를 어루 만져 준다.

지금은 겨울이다. 이 시기때이면 입김이 올라오기도 하는데 요즘은 그런게 없다.

밖은 추웠더라도 내 안에는 온기같은 마음이 남아 있었다. 


소풍을 다녔을때와 같은 마음, 그리고 여행길에 올랐을때 신비로움 그게 나의 추구하는

미학이었다. 어릴때는 광고로 나왔지만 애버랜드 퍼레이드 썸머 페스티벌 그런 곳이 있다면 방문해 

보고 싶었다. 아마 지금은 그런 기분이 덜한거 같다. 그럼에도 나는 봄과 같은 기운이 좋았다.

지금은 나는 어떤 새로움을 찾으며 여정을 가야 하는 걸까, 지금은 여행은 아닌거 같은데


그래서 나는 음악을 듣는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곡이 있으면 그 위주로 듣는다. 

만화 코스프레를 할때 그런거도 신기로워 보였다.  한번은 소공녀 같은 

원피스를 입고 다녀보고 싶고 그렇다. 아 그게 경성복과 같구나.

보수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새로운 기분은 내가 생활해 나가는데 어떤 영감과 같다.


그리고 산에 산책을 간다. 얼굴이 홍조가 띄면서 땀도 흘리고 먹는 밥도 맛있게 먹는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하지만 늘 봄과 같은 곳에서 따뜻함만을 전하는 소녀 같은 

향이 난다. 


p.s 하지만 나같은 사람도 집에서는 답답한 사람으로 밖에 될 수 없다 

눈치가 없기 때문이다.

2025년 12월 27일 토요일

사람에 대한 평가

12월 27, 2025 0 Comments

사람에 대한 평가
사람에 대한 평가

이번에 내가 아는 이모가 있어 만나 티 타임을 가졌습니다. 그 이모님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국어 선생님입니다. 엄마와 오랜 초등학교 동기기도 합니다. 

그분은 저와 엄마와 셋이서 만나면서도 자주 이야기 하고 시간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 이모와 만나면 인생상담을 주로 합니다. 그 이모는 infj 이지만 저는 infp 입니다.


저는 그 이모가 내 말도 들어주면서 상담을 해주는 말이 좋았습니다. 그 이모도 학생들을 

가르치지만 밭일도 하고 열심히 하는 분이기도 합니다.  저는 그 이모와 진지한 이야기를 

자주 하게 됩니다. (상담이다보니 그런거 같아요) 저도 그에 맞춰서 듣고 합니다.


그 이모분도 이야기를 할때 요즘 어떤 생각이 드니, 너가 제일 좋아하는 건 뭐야 

하면서 제가 말할 수 있도록 주도권을 줍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그 말이 편하고 좋았습니다.

그리고 이모가 저에게 중요한 말을 해 주었습니다.

'소현아 너도 앞으로 살아가겠지만 대부분은 사람들은 편향적인 사고를 갖고 있어

우리는 지금  어떤 사람을 대할때 장점과 단점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

그 사람을 판단할때는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해,' 


저는 그때 고등학생때 영어 선생님이 생각이 났습니다. 우리반에 있는 친구들이 

그 영어 선생님을 배제한 적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반이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그 선생님을 오해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때 다른 반에 아는 친구는 이렇게 말합니다.

'왜 난 그 선생님이 좋은데?' 라고 말했을때 그때 저는 우리가 사람에 대한 평가가 치우쳐지면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는 지금 생각하면 그 선생님이 마음 아팠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하는 얘기로 이 사람은 이럴거다 라고 평가 하는건 편집적 오류가 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실 가까이에만 보면 우리가 알 수 있는 일이라고 

보는데 말입니다. 저는 다음번에도 그 이모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모님은 '혹시 내말이 좀 지루하거나 불편하지 않았니?' 하고 이야기 했을때

'이게 이야기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태도 입니다.' 라고 말해서  웃으며 서로 맞장구를 쳤습니다.


사실 한 1주일전에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제가 어떤 말이었는지 생각하다 적게된 글이었습니다.

저도 언젠가 이 말을 전해줄 사람이 나오면 이야기 해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와 가까이 알고 

지낸 분들도 저를 더 잘 알기 때문에 만나는건 아닐까요.


p.s 원래 소문이 나면 이야기 하지않았는데 덧붙여 오는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고등학생때 

소문도 그랬거든요.

2025년 12월 23일 화요일

함박스테이크(습작8)

12월 23, 2025 0 Comments

 함박스테이크 



김소현(습작8)


   내가 제일 처음 먹어본 함박스테이크는 집주변에 가포 바닷가를 볼 수 있는 레스토랑에서 였다.

한번씩 이웃들 또는 엄마 아빠 친구와 소모임이 있을때 같이 가기도 했다. 바닷가 주변에 있는 

레스토랑이라 꽤 멋지게 보였다. 나는 어릴때 언제 한번이라도 가볼 기회가 있을까 기대도 했었다.

거기서 주 메뉴는 함박스테이크 였다. 가격은 11000원 정도 였다. 한 7살 되던 시기에 11000원은 

비싼 가격이었다. 함박스테이크가 나오자 돌판위에 지글지글 익는 소리도 들렸다.

나는 군침을 돌았지만 진정하고 스테이크를 조심히 썰었다. 함박스테이크가 부드럽게 씹히는 느낌도 있고 담백한 맛이 났다. 나도 은근히 고급 입맛으로 먹는구나 하는 생각도 하면서 먹었다. 그리고 생일날은 그 레스토랑집을 들렸지만 조형물만 있을뿐 그 레스토랑은 문을 닫은거 였다.

그날은 하는 수 없이 다른 맛집을 찾아서 갔다. 이제 그 레스토랑에서 먹는 함박스테이크는 추억으로 만 남은거다. 

  그리고 두번째로 내가 기억에 남는 함박스테이크가 있다. 바로 마산 창동에서 함박스테이크 가게가 있었다. 그 시기에는 인스타 그램이 유행하는 시기는 아니고 도입이 되는 중이었다.  그때는 블로그를 보고 맛집을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나는 친구와 함께 창동에 들러 그 맛집을 찾았다.

그 함박스테이크 맛집은 1인분 7000원 정도이고 꽤 저렴한 가격으로 팔고 있었다. 사실 그 스테이크 맛집은 한정판으로 수량을 정해서 판매를 하는거였다. 그래서 인지 블로그로 입소문도 나고 사람들 후기로는 만족한다는 글도 적혀 있었다. 우리도 그 시간에 가면 판매를 하고 있을까 생각 하며 그장소를 찾아 갔다.

다행이 도착해서 물어보니 주문을 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나온 함박스테이크는 위에 꽃잎이 얹어져 있었다. 사장님의 센스는 정말 멋진거 같다. 그 집도 오래는 못갔지만 지금도 인상에 남게 되었다.

   함박스테이크는 요새는 마트에 낱개로 파는 거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건 가격이 저렴해도 맛있는 편은 아니다. 그리고 일본식 함박스테이크도 있는데 후쿠오카 함바그도 사람들이 자주 찾는거 같았다. 함바그는 일본에서 함박 스테이크를 

그렇게 부른다. 어쩌면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단어인 햄버거도 있다. 그렇다. 햄버거 안에도 다진 고기가 들어있으니 다 비슷한 언어이다. 

  최근에 먹어본 함박스테이크는 주변에 경양식 집에서 주문해 보았다. 이번엔 계란이 위에 올려져 있다. 여기서 시킨 함박스테이크도 괜찮다. 하지만 어릴적 먹던 게 그리움이 더 진하게 느껴져서 인지 

그때 먹었을때 만큼의 맛은 나지 않는다. 

  마산 주변에 함성동이라고 제일 오래된 집도 있는데 내가 고등학생때도 있었던 장소도 있다. 바로 가게 이름이 ‘함박눈’이다. 이름도 이쁘다. 이때 친구와 함께 쇼핑을 하고 더치페이를 한적이 있다.

  그저 지나가다 문구만 보았을뿐인데 함박스테이크에 대해 이렇게 많이 이야기가 될 줄 몰랐다.

사실 어디를 가나 맛은 비슷하다. 나는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제일 먼저 갔었던 장소 가포 쪽에 레스토랑이다. 지금은 가포 바닷가 있는 공간이 도로로 메워 졌다. 아마 그 지금은 그 장소가 있었다는 사실도 모를거다. 일반 음식점에서 먹은거 보다 장소와 분위기 그리고 기억이 있는 지금, 그게 사실이 더 나에게 남는게 있다. 혹시 함박눈 내린다 이야기 하는거도  그 함박일까?


2025년 12월 16일 화요일

바다 (습작7)

12월 16, 2025 0 Comments

바다 


김소현(습작7)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은 힘든일이다. 나는 항상 타이밍이 안맞는 그런 사랑을 했다. ‘너는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아.’ 또는 ‘나는 여자 친구가 있어서…’ 가 대부분 이렇게 통보를 받았다. 나에겐 어떤 사랑이 맞는걸까, 늘 속으로 앓기만 했다. 나는 마음이 먼저 가는 아날로그적 사랑을 선호 한다. 그렇다고 나는 그렇다고 누구나 다 받아주는 성향은 아니었다.

 그저 누구라도 이야기는 들어 줬으면 하는 마음만 간절했다. 그리고 페이스북을 하던 시절 연애에 대해 상담을 하는 채널이 있었다. 나는 혹여나 도움을 얻을 수 있을까 싶어 메신저를 보냈다. 그리고 이야기를 적을때 장문의 문자로 하소연을 하며 글을 적어 보내기도 했다. 지금은 그렇게는 하지는 않는 편이다. 그때 그 채널에 상담하는 분은 공감을 하고 들어주었다. 그리고 나에게 한가지 제안을 했다. ‘우리는 원래 사랑을 하는건 당연한거에요, 그래서 그만큼 아프기도 하겠죠. 소현님이 주신 사연을 보니 저도 마음이 안쓰럽기도 해요. 하지만 우린 더 넓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해요. 가끔 친구와 만나 밥도 먹고 이야기도 해보는 거에요. 여행을 다녀오는 거에요.그리고 부산 같은데 바다도 보고 힐링을 해보면 어떨까요. 지나간 일은 털어낼 수 있을거에요. 소현님의 진심을 알아주는 분은 언젠가 나타나요.’

 나는 그 말에 눈물 방울이 하나 맺혀있었다. 나는 사랑에 간절했지만 이별하는 방법을 잘 몰랐던거 였다. 그리고 상담사 분이 말하는대로 실천해 보기로 했다. 원래는 생각대로 이루어 질 수 없는 일도 많다. 그렇게 체념을 하면서도 쓰라린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그리고 부산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광안리를 혼자서 찾아 갔다. 공허함 때문일까, 아니면 환상에 젖어서 거기서 헤어나지 못하는 걸까, 오히려 그런건 불안이 되어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지하철을 타고 광안리에 도착하자 광안대교도 보이고 넓은 모래사장도 보인다. 그리고 파도가 물을 밀면서 내 마음에 스며 들어 왔다.

 ‘그래 이곳이 바다구나.’ 

조금이나마 정신없는 마음을 가라 앉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한곳에만 쳐다보는 성향이다. 하지만 바다가 나의 시각을 넓혀 주었다. 그 넓은 바다에서는 고요하면서도 멍때리며 바라 보고 있으면 거기서 안정감도 느낄 수 있게 한다. 그걸 물멍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런 시간들 속에서 나는 성장이라는걸 알게 되는구나 하며 생각해 본다. 나의 마음도 바다와 같은 마음이면 좋겠다. 나는 이별에 대해 늘 익숙한건 맞다. 지나고 보면 나의 덜 성숙했던 마음에 반성을 하는 계기도 되고 다음은 이러면 안되겠구나 하며 되새겨 보게 된다. 그렇게 나는 나 혼자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리고 지금은 꼭 마음이 아파서만 찾는게 아니라 심심하기도 하고 마음이 닫혀 있다고 생각될때 바다를 찾는다.

 어느 순간 부터는 나의 마음도 성찰할 수 있게 되고 사람에 휘둘리지 않는 방법을 알아가는 거 같다. 하지만 이게 누군가를 만남에 대한 두려움은 아니길 바란다. 나도 거기에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는 연습도 필요하다. 경험은 나를 단단하게 해주고 있다. 그리고 혼자서 버스를 타고 바다를 찾았다. 나는 결국에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외사랑을 하고 있었던 거다. 바다는 아무말도 하지 않지만 나를 잔잔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다.

2025년 12월 11일 목요일

사람의 향기 (습작6)

12월 11, 2025 0 Comments

 사람의 향기


김소현(습작6)


사람마다 각자의 향이 있다. 요즘은 공방이나 시중에 보면 MBTI 별로 자신의 성격과 매치된 향수를 만드는 곳도 생겼다.

나도 사람들에게서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향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내가 말하는 향수는 만들어진 인위적인 향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성격 취향에대한 향을 말한다.

나는 어떤 향기를 가지고 있을까. 내가 나타내는 향은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게 취향은 아닌듯 했다.

하지만 나도 나만의 성향이었기에 거기에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그러다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친구도 몇 있다. 나는 지금도 친한 친구가 먼저 손을 내밀어 주었을때, 나도 그 친구의 향이 좋았다.

   이전까지는 나는 어떤 향기를 지닌 사람일까 나 스스로도 찾지를 못했다. 다른 사람에 맞춰주고

비슷하게 행동을 하려고 한 탓일까, 실제 나만의 의 성향을 잘 몰랐었다. 그리고 나는 어떤 향기를 지녔을지 생각해보니 못한 듯 하다.  나는 고등학생때 부터 알게 된 친구에게 물어 보았다. ‘내가 너랑 이렇게 친하게 된 계기가 어떤거였을까, 내가 너와 친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라고 물었더니 ‘그건 너랑 똑같이 생각하기 때문이야.’ 라고 대답했다.

 ‘똑같이 생각한다라고?.’  그 친구는 내가 갖지 못한 밝은 성향이 배울점이고 부담감 없이 만나는 친구니까.라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도 그 향이 지워지지 않고 유지 되었으면 싶었다.

   나는 올리브영에 향수 파는곳에 들러보았다. 나는 취준생이었기에  비싼 향수는 쓰지 못한다.

그중에서 랑방 모던 프린세스 오 센슈얼  뚜왈렛 이라는 향수를 맡아 보았는데 시큼한 청포도 향이 났다. 웨딩드레스 형태로 된 향수였는데 나는 이런쪽에 취향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이런 향수들을 보면서 내가 지향하고 싶은 향기를 생각한다. 그리고 앞으로 나는 이런 향이고 싶었다.

어디서든 당당하고 멋진 향기가 있는 사람, 그런 거도 과연 향수로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아니 이미 서울쪽이나 대도시에는 많을 듯 하다. 연말에 또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그 사람의 성향을 생각하면서 향을 선물을 해주는 것도 어쩌면 특별할 거 같다. 그래도 나는 향이 고급인 향은 조금 부담스럽고 세련되면서도 자연스런 향이 좋다. 어쩌면 향수 얘기로 주제가 벗어난건 아닌지 모르겠다. 

  어쩌면 나를 돌아 보았을때, 그 향은 진하지만 여운을 주기도 하고 그래서 더 생각이 나는 향기도 있다고 생각한다. 한 영화에 보아도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생각이 났다. 미래에서 온 사람이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찾다가 나중에 돌아갈때 여자 주인공의 기억을 지운다. 그리고 그 여자 주인공은  그리운 라벤더 향이 난다고 말하는 장면이었다. 나는 그걸 비유해 보고 싶었다.

이 영화에서 보았을때 그 사람에 대한 분위기 뿐만 아니라 그리움도 이렇게 표현할 수 있구나 생각을 했다. 

   나는 옷을 입을때는 소녀 컨셉으로 옷을 골라 입는다. 친구와 같이 옷을 사러 갈때도 내가 그런 옷이 더 잘 맞는다고 한다. 그렇다 나는 섬세하면서도 소녀 같은 향을 지니고 있다. 그 향은 내가 어떤 일을 해도 결과물로 나타나고 있었다. 그렇게 보면 화장품 회사 중 에뛰드에서 파는 향수도 생각이 난다. 

   지금은 시간이 지나도 은은하면서도 기억에 남는 그런 향이길 바란다. 내 취향은 확고한 편이고 그 색감이 강하게 드러난다. 나도 원래 그런 향을 지닌건 아니었고 친구와 지인을 만나면서 좀 더 연구를 했을 뿐이다. 하지만 나도 나만의 색감을 가진 사람이다. 나만의 향이 만들어지고 세상 밖으로 표출을 했을때 난 좀더 나은 사람이 되어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그 순수함이라는 향을 다른 사람에게도 공유할 수있을까. 나는 두려우면서도 나의 향을 슬며시 꺼내며 나도 내 친한 친구처럼 다가가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2025년 12월 9일 화요일

꿈에 관한 이야기, 길든 짧든 가보면 된다.

12월 09, 2025 0 Comments

꿈에 관한 이야기

 

저는 고등학생때 학교 교단에 서서 하고 싶은 말에 대한 자유 발언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학교 친구들은 각자 하고 싶은 말들을 꺼내면서 못다한 이야기들을 하곤 했습니다.

자신이 겪었던 고민, 그리고 나만의 성격에 대해서 라던지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의 순서가 되었을때 저는 떨리는 마음을 안은채로 교단에 올라갔습니다. 저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가 저는 갑자기 생각난 말이 있어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러분 꿈을 믿어야 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해요.'

저도 사실 이 말을 하고 난 뒤에는 어안이 벙벙 했습니다. 갑자기 말은 했는데 어떻게 마무리를 

할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제 꿈은 미술선생님입니다.' 라고 끝을 맺었습니다.

그때 말이 통했을지 모르지만 일단 박수를 받고 퇴장을 했습니다. 저도 무엇 때문이지는 모르겠습니다.

초등학생때도 그렇고 글을 적은걸 보면 '나는 미술선생님이 되고 싶다.'라고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술은 어떤 이유로 나에게 다가오게 된걸까, 미술 사생대회를 나가면 나는 그 시간에 행복을 느끼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데에 자부심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학 생활에도 미술을 이어져서 왔고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미술 공모전에서도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지금 그 상장을 가지고 있어도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진로를 변경하는 순간에도 이 길이 맞는지 

고민의 연속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 다른 경험들을 시도 했지만 저는 지금도 늘 제자리 걸음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일단 해보면 남는게 있다고 생각해 한 일들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저 스스로를 증명해야 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습니다. 디자인 공부를 마치고 나서 식자재 마트 알바 캐셔를 시작하겠다고 했을때 그때는 내가 못하는 일도 있구나 하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저는 빵집 알바와 같이 장사 하는 쪽에는 재능이 없다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취업 공부를 하면서도  저는 그 시간이 힘들었지만 내가 다른 관심 분야는 나누면서 하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확실히 잘 안되는 분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다른 길을 보고 간 결과 최선을 다하면 분명 후회는 되지 않는 선택이라는 결과는 나왔습니다. 결과가 중요하다만은 제가 그 속에서 활동을 하던 일들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저 한일에 투자 한건 아니고 관심은 가지고 있어서 시작한 일들이 있습니다. 남들보다 그렇게 잘한건 아니어도 제게는 그렇습니다. 

저를 가르치 선생님도 너는 그림이 맞다 라고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양한 경험은 시도를 해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런 꿈을 선생님이 믿어주고 내가 그걸 믿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요. 

앞으로 그림으로 또 돌아오면 제가 성장한거길 바라면서 저는 계속 꿈을 바라보며 가고 있습니다.

2025년 12월 5일 금요일

홍차라떼(습작5)

12월 05, 2025 0 Comments

 홍차 라떼  



김소현(습작5)



밀크티는 보기 흔한 이름이다. 하지만 홍차 라떼라고 하는 이름은 지금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어느 한 테이크 아웃 카페를 갔을때 나는 홍차 라떼 라는걸 시켜 보았다. 홍차 라떼는 꼭 옛날에

있었던 이름과 같다. 그리고 한입 먹어보는 순간 달달하고 쌉싸름한 맛이 입에 감돈다.

우유는 거품을 머금고 있고 그 안에 홍차가 섞여 안에 있는 단맛을 커버해 준다.

  그걸 맛보았을때 나는 밀크티 라는 이름보다 홍차 라떼가 더 좋았다. 누구나 처음 만나 서로에 대해 잘 모를때  느낀 감정과 같은 맛이라고 해야할까. 나는 홍차라떼를 보고 연인이 만나 감정을 나누는 

그런 맛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엔 단맛을 느끼다가 끝에 씁쓸하게 홍차 티백을 우린맛이 좀 남은 이별과 같은 맛도 난다. 처음과 끝을 마무리한 시점이 연애는 홍차 라떼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한번씩 홍차라떼가 자주 생각이 난다. 끝이 쓴걸 알면서도 그래도 찾고 싶은거라 생각한다. 사실 나는 홍차 라떼와 같은 연애는 해 본적이 없다. 한번씩 예전에 연애 유튜브를 보면서 든 생각이어서 그렇다. 나는 그 안에 따뜻함을 유지하고 싶은 사람이기도 한데 나는 성격이 너무 급했다. 그래서 그걸 안 사람은 받아주는 사람도 없었다.

  늘 혼자 곱씹으면서 생각했지만 연애는 나랑은 맞지가 않다.라는 관념도 가지게 되었다. 어쩌면 그때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외로움이라는 건 거기서 오는 거라고 생각해 또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그리고 나는 혼자 남았을때 거기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나만 아파하는 연애는 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런 감정이 오고감이 심한 나는 그런 사람을 받아주는 사람은 없을 듯 하다.

그걸 생각하면서도 홍차라떼는 맛있다고 먹고 있다. 

   그리고 나는 거기에 대해 이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에는 내가 다른 일을 하면된다고 생각하고 내 일에 집중하는 일을 연습을 했다. 하지만 아쉬운건 누구나 좋아하는 마음도 있고 사람을 구분해 내면서 내가 겪어봐야할 성장은 놓치게 된건 아닐까 걱정도 된다.

절절히 사랑도 해봐야 하고 고백도 해보고 그래서 더 소중한 거를 나는 머리로만 생각을 한다. 

그래서 나는 다른사람보다 상처를 받는게 더 크게 느껴졌다. 정말 보고 싶다고 연락도 해보는 일도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홍차라떼는 그저 대체재일 뿐이다.

  지금은 나는 꼭 사람이 있어야 내가 안정되고 행복하다고 볼 수는 없을 거 같다. 같이 있을때는 소중히 대하고 또 내가 따로 시간을 보내도 그 안에도 행복을 찾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다음 연애는 서로가 성장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걸 내 친구가 알려주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소개팅이나 갑자기 만나는 거는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자만추이기 때문이다.  다음번에 나는 삶을 겪어 보고 나서 찾아온 학생들에게 홍차 라떼를 건네며 이야기를 들어주고 상담도 해주는 그런 사람도 되고 싶다. 만화 고양이 보은에 주인공이 고민이 있어 찾아오는 고양이 동사무소 같은 곳 말이다. 나는 연애를 너무 머릿속으로 만 아는게 아닐까


2025년 12월 2일 화요일

만화 동아리 아페론(습작4)

12월 02, 2025 0 Comments

 만화 동아리 아페론


김소현(습작4)


  고등학생 시절, 나는 친구들과 어떻게 지낼 수 있을까 하며 고민이 있던 시기가 있었다.

특히 나는 중학생때부터 친구를 잘 사귀지 못했었다. 오전 수업이 끝나고 점심 시간이 되면

학교 친구들은 각자 친한 친구와 밥을 먹으러 간다. 저는 이번에도 교실에 혼자 남아 있었다.

저는 원래부터 그렇기 때문이라 그 상황을 무덤덤하게 받아 들였다.

  그러던 어느날 학교에서 선배들이 동아리 모임을 가입하라고 홍보를 하고 있었다.

저는 어디에 들어가면 좋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제 눈에 띄는 건 만화 그리기부 였다.

저는 중학생때도 그렇고 그림을 그리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신청해 보기로 했다.

동아리도 원서를 넣어서 신청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지원하는 종이 안에 미야자키 하야오

만화 그림체를 좋아한다고 적었다.  그리고 동아리 지원을 했지만 그곳 선배들이 찾아와 미안해 하며  만화 그리기 부에 지원하는 사람이 적다고 말해 주었다.

  그래서 그 동아리 선배분이 아는 동아리를 소개 했는데 그곳도 만화 동아리 이다. 그 동아리는 만화로 주제이기도 하지만  코스프레 활동도 하고  만화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친목을 다지는 동아리 였다. 그래서 저는 그 만화 동아리부 로 옮기게 되었다. 그때 거기서 반장 역할을 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저의 바로 옆에 있는 반이었다.

   친구의 엄마는 유치원 선생님이었다고 이야기 해주었다. 그래서 제가 하는 말에 공감도 해주고 장난도 치고 했다. 나는 그 친구가 이야기 해주는 농담에 처음으로 재미라는 걸 느꼈다. 항상 뻣뻣함 무표정이기만 했는데 그 친구와 이야기를 한 덕분에 좀 더 세상이 밝게 보였다. 그리고 동아리에는 친구와 친한 또다른 친구와 이야기도 했는데 그때도 재밌었다. 저희는 동아리 활동으로 등나무가 있는 의자에 모여서 서로 이야기를 하고 했다. 그때 부원 선배 언니들과 같이 모였는데 활동을 좀 더 신나게 하자는 의미로 노트 숙제를 주기도 했다. 우선 우리 동아리 친구들 전부 연습장을 가져 왔는데 거기서 선배 언니들이 피드백을 하는 역할을 해주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 그리기 또 캐릭터 소개 등 만화로 이야기할 수 있는 글들을 적기도 했다. 그러면 뒷장에는 롤링페이퍼 형식으로 부원 언니들이 적어주었다. 나는 교실 뒤쪽으로 가 그 글들을 읽었다. 이때 저는 나만이 하는 생각도 공유할 수 있다는걸 알게 되었다. 마치 나 혼자만 있던 세계에서 노크를 하고 들어온 기분이었다.

  그리고 한번 밖에서도 활동을 한적이 있는데 그 친구가 마산 창동에 한번 가자고 했다.

창동예술촌이 생기기 전인데 그때 ‘마산 코믹 페스티벌’이라는 행사가 있었다. 그 친구는 공연을 한번 해보자고 제안을 하고 같이 신청하자고 했다.

   나는 무대나 사람들 앞에서 춤을 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두려움도 있었지만 그 친구는 같이 하면된다고 용기를 주어서 준비를 하게 되었다. 춤추는 곡 이름은 드림하이 드라마 ost 

‘드림하이’라는 노래 였다. 그때 분장도 했었는데 친구가 거기서 입을 옷을 빌려주고 메이크업 하는 일을 좋아한다고 나를 분장 시키는데 도와 주었다.   

   춤은 학교에 있을때 영상을 보면서 연습도 하고 했다. 나는 춤을 잘 못추지만 일단 따라하는대로 해보았다. 창동 무대에서 순서가 다가오자 마음을 졸이기도 했다. 그리고 무대에 서자 마자 음악이 나오고 나는 춤을 추었다. 사람들 앞에서 춤이라니. 중간에 실수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동작을 움직이고 하니 두려움이 사라진다는 걸 느꼈다.

  사람들은 환호를 해주어 용기도 생기고 했다. 나는 완벽한 춤을 구사하지 못했지만 어느샌가 나도 무대를 즐기고 있었구나 하는 걸 알게 되었다. 음악이 끝날때까지 추고 마무리 하면서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때 나랑 친구는 서로 격려를 하면서 무대로 내려 왔다. 거기서 공연을 마치자 마자 사회자분이 2만원 정도 돈을 주셨다. 그때 나는 노력을 하면 보수가 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대신 나는 돈을 받는거 보다 더 큰 교훈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바로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을 도전해 보는일이었다. 그리고 동아리 친구와 함께 해서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는 걸 마음에 새기게 되었다. 

    나는 학교 수업이나 청소시간이 끝나면 그 친구 반에 들어가 이야기도 하고 장난도 쳤다.

나도 그 시기에 계속 보는 만화가 있었는데 쉬는 시간에 그 만화에 대해 이야기도 했다.

그 친구는 장난이 많았는데 그 친구랑 도둑 경찰놀이도 했다. 그 친구가 도둑이고 내가 경찰을 맡았다. 그러다 중학생때 담임이었던 선생님도 만났다. 선생님은 ‘어머 소현아 너도 웃을 수도 있었구나, 앞으로도 행복한 아이가 되길 바란다.’ 라고 하셨다. 나도 그 선생님께 인사를 드렸다.

   그 후로도 그 친구와 부산도 다니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대학 가서도 화장품을 어떤걸 사야 할지 몰라서 물어 볼때 추천도 해주었다. 그리고 화장하는 방법도 도와 주었다. 만화 동아리에 가입을 하면서 이렇게 친구랑도 놀 수 도 있구나 하는 걸 알았다. 지금도 연락을 하면 답장도 해주고 받아주는 친구이다.

   만화 동아리에 가입했던 다른 친구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그 시기가 즐겁고 행복했다면 나는 그걸로도 충분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한 분야에 집중을 하고 만화를 좋아하는 오타쿠가 맞다.


2025년 11월 27일 목요일

라오스 해외 봉사에서 있었던 에피소드

11월 27, 2025 0 Comments

 

라오스 해외 봉사에서 있었던 일들

해외 봉사에서 못다한 이야기


2015년도에 라오스 해외 봉사를 다녀왔습니다. 첫 대외 활동이고 처음으로 해외를 동남아로 갔습니다.

(일본에는 아직 안가본...) 

그 시기에는 한국에서는 겨울이었지만 동남아는 여름 기후 였기에 타이베이를 가기 전에 

여름 반팔로 갈아 입었습니다. 타이베이 공항에서는 쇼핑을 하고 부원들과 식사도 같이 했었습니다.

태국에 도착하니 후덥지근한 기온이  들어오는 느낌이었습니다. 마치 열대식물원을 구경가는 

느낌이기도 했습니다. 


태국에서 경유해서 8시간을 더 기다려서 라오스 비엔티안까지 가는 비행기를 타고 갔습니다.

라오스까지 갈때는 작은 비행기 였기 때문에 흔들림도 좀 심했습니다.(롤러코스터 타는 줄 알았습니다. 식겁 했지요.)공항에 도착해 보니 비가 많이 왔었나 봅니다. 축축한 느낌도 있었습니다.

저녁에 식당을 가고 술집 바와 비슷한 곳에 가기도 했습니다. 휘황찬란하고 어디에 눈을 둬야할지 몰랐습니다. 그곳에서 밴드 음악을 하는 분이 강남스타일 노래도 불렀더니 주변에서 환호 소리도 들렸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라오스 한 학교에 가서 3일간 현지 생활도 하고 봉사활동도 했습니다. 

제가 맡은 분야는 도서관 벽화 그리기와 페이스 페인팅이었습니다.  (벽화는 주제 찾으려고 통영에

동피랑에 가서 벽화 그림들도 보고 갔습니다.)


#제를 올릴때 있었던일


마을학교 현지에서 신을 모시는 절이 있었는데 아침에 사람들이 기도를 하기 위해 모인다고 했습니다.

저는 옆에 있는 안내하는 라오스 친구에게 '한국에서 시주(양초 쌀 등을 부처님 상에 올리는거)를 

하는거 같아요.' 라고 했는데 그 친구(한국에 공부 하는)는 '아니에요 제 이름은 시주가 아니에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앞에 스님이 라오스어로 염불을 했는데 저는 되도록이면 슬픈 생각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할머니 핸드폰

봉사를 낮에 하고 저녁에는 현지인 분들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했습니다. 그때 가족 분들과 함께 있으면서 어떤말로 통역을 해야 할까 고민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과 사탕을 가지고 얼마만큼 멀리 튕기는지 하는 놀이도 했습니다. 그러다 핸드폰을 꺼내고 시간을 확인을 하려고 했습니다.

현지여서 그런지 핸드폰 기본 기능은 할 수 있지만 시간을 확인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곳은 와이파이가 없어 오로지 불을 밝히는 전구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때 같이 홈스테이 생활하는 할머니께서 자신의 핸드폰 

(2G)을 보이시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게 스마트 폰인데 뭔가 미안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또 한번 새벽에 화장실을 가려고 폰에 전등을 켰었습니다. 그때 할머니가 잠에 깨시더니 다시 자신의 핸드폰을 보여주시는거 였습니다. ( 두번 민망했습니다.)

#닭고기

현지에서 생활하는 마지막 날에 학교 안에서도 제를 지내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지쳐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도 함께 와서 의식을 하고 팔에 끈도 묶어 주었습니다. 끈을 묶어주는게 악귀를 물리고 행운을 비는 의미에서 묶어 주는 거라고 했습니다. 그거를 아침까지 하고 있어야 그 운이 유지 된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마을 안에서 닭을 삶으셔서 같이 기도 하는 부원들에게도 고기도 나눠 주었습니다.

 p.s. 그런데 보니 다른 사람들보다 나에게 고기를 더 얹어 주는거 같았다.


관광하면서 있었던일

#블루라군

블루라군이 라오스에서 제일 유명한 곳입니다. 물색이 푸른 빛깔이어서 이쁘기도 합니다. 

여기서 부원들이 다이빙 실력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저는 한 사람 물에 입수를 할때 옆에 과자가 있어서 먹다가 '이렇게 과자를 뜯어 먹는 맛이 있군..'하고 이야기 했습니다.(우연의 일치?)

일단 저는 이 부분들이 봉사 하는 가운데 인상깊은 일이었는 데요. 풍경을 보고 와서 마음이 뿌듯해야 하는데 고생이 2배여서 꼭 좋지많은 않았습니다. 나름 겪었던 일을 꺼내보게 됩니다.

나의 에피소드 끝



2025년 11월 26일 수요일

동사무소 앞 분식 포장마차 트럭(습작12)

11월 26, 2025 0 Comments

 동사무소 앞 분식 포장마차


김소현(습작 12)


우리집 주변 동사무소 앞에 분식 포장마차 트럭이 있다. 내가 5살 무렵부터 이사 왔을때 부터

동사무소가 새 건물로 지어지기전 부터 있었다. 그땐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같이 하고 있었다.

핫도그 작은 거만해도 500원 이었는데 밀가루를 더 묻혀서 두껍게 만든 핫도그는 천원이었다.

순대도 1인분에 2500원이었다. 사실 어릴때는 잘 몰랐다. 학원을 마치고 나면 늘 그 포장마차

를 지날때 입맛을 다시곤 했다. 엄마는 언제 그 마음을 알아챘는지 오뎅이라도 먹고 갈까?

하고 말을 건넸다. 그때 나와 동생은 먹고 싶었던 분식 하나 시켜서먹기도 하고 오뎅도 몇개

건져서 먹었다. 그리고 뜨거운 오뎅 국물을 떠서 호호 불며 먹었다.  그 포장마차에서 파는 오뎅은 

하나에 500원 하던 시기였는데  3개를 먹으면 천원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오고 간 자리에는 

몇 사람끼리 와서 오뎅을 먹고  꼬지 놓고간 거만 해도 10개 이하 정도 되었다.  

그리고 가장 추울때 간식이 가장 먹고 싶은 계절이었다. 그 포장마차는 생각이 나면 들르는 장소가

되었다.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며 계속 하고 있다.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핫도그를 시킬때  큰거로 

달라고 하는데 아저씨가 설탕 또는 케첩을 뿌려 먹냐고 먼저 물어 본다.  물론 나는 둘다 해달라고 

한다. 케첩만 하면 발라진 부분 외에는 빵이 밋밋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 포장마차와 내가

시간이 흐르는데 20년은 더 되었다. 지금은 물가 때문에 가격이 오르고 가격대도 올랐지만 

장사일도 아저씨  혼자서 하고 있다. 하지만 물가가 올라도 지금 다른 곳 물가에 가격대에 비하면 

정말 저렴하게 분식을 판매한다.  나는 거기서 순대를 사고 주변에 정육점에서 곰국을 산 뒤

집에 와서 곰국과 함께 순대를 넣어 끓여 먹기도 한다. 그러면 순대국도 된다.

포장 마차를 보면서 항상 그곳에 대한 기억도 나고 그래서 지금도 그 자리에서 있어줌에 

감사하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오늘은 추운데 그 포장마차에 호떡 하나 사러 가야 겠다.


p.s 예전에 동사무소가 지금 위치 말고 밑에 있을때 잠시 알바를 했었는데 그곳에 세무과 언니가 

주변에 분식 파는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래서 내가 우리집 주변에

포장 마차가 있다고 하니깐 거기까지 어떻게 올라가냐 하고 말을 한 적이 있다.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도 그때 기간동안만 했었다)


2025년 11월 18일 화요일

나에게 보내는 편지(습작3)

11월 18, 2025 0 Comments

 나에게 보내는 편지


김소현(습작3)


소현아 나는 지금 30대 초반이야. 나는 지금도 불안정하기도 하지만 또 나름의 삶을 살고 있어.

너가 그래도 이렇게 열심히 달려와서 내가 원하는 일도 할 수 있게 되었잖아. 나는 20대의 불안한 

나도 충분히 멋지고 이쁜 사람이야. 나는 나 스스로에게 칭찬을 해주는 일이 없었지.

너가 하고 싶은 미술도 하고 블로그도 하고 너가 꿈꾸는 일을 하기 위해 이렇게 만들어 왔잖아.

나는 참 꿈이 많이 바뀌었어. 그런데 그 중에서도 미술을 참 좋아 하는거 같아, 글쓰기도 좋아하고, 너는 그거 두개만으로도 내 삶의 전부인거 처럼 뛰어들며 살고 있어. 

   나는 이것만큼 꼭 해내야해 하고 시도 해본일이 참 많은거 같아, 너는 너무 여리고 그래서 곧잘 

사람들의 말을 받아들이기만 했어, 그러면서도 너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에게도 이해를 하려고 했어.

너는 그런 말을 듣고도 사회 생활을 하면서 너가 상처를 받은것도 모른채로 그렇게 살아 왔구나.

    너에게 모든 일들이 처음이고 시간이 많이 걸리기도 했어, 일에서는 항상 느렸지, 그래서 너는 사람들에게 이상한 사람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어. 나는 조용하지만 너를 표현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거 같더라. 그래서 나는 그림이나 예술을 좋아 했나봐.

  그리고 일은 너는 충분히 해내고 있음에도 주변 사람들이 너를 그렇게 봐주지 않는다데에 안타깝고 그래. 하지만 기억해둬 너가 지금은 애매한 사람 일지 몰라도 너 안에 빛을 간직하고 실행해 나가면 그건 결과가 나타난다는 거야, 그러니 상처 받지 말고 견뎌내길 바래.

그리고 나중에는 너의 마음을 잘 아는 사람도 만나게 될꺼야. 너가 원하는 친구도 사귀었잖아.

  나중에는 진짜 네가 찾는 그 길이 있다는거야. 그러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앞서나갈 수 있고 스스로도 나는 삶을 잘 살았다고 느끼는 날이 와. 그리고 지금 너의 꿈은 잠시 넣어두는게 좋을거 같아. 너가 그 꿈을 이루기 전까지 확실하지 않으면 이루지 못한 결과에 비난이 화살도 받을 수 있어.

   그런 삭막한 사회에서 나는 한 줄기 물처럼 그런 사람이 되길 바래. 그렇다고 너무 물이 깨끗하면 물고기가 살지 않을 수 있어. 가끔은 사람들에게도 맞춰주며 그렇게 가다보면 너가 생각하는 일도 실현되는 날이 와, 위버맨쉬, 너 자신을 믿어. 한 예술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영감을 얻기도 했잖아. 지금 내가 적고 있는 이 글도 힘들때면 계속보고 너의 목표를 잃지 말고 나아가.

   이 글이 지금의 너의 버팀목이 되길 바래. 지금의 틀에 갇혀서 앞에 있는 일만 보지 말고

좀 더 넓게 보는 시각도 필요해. 한국이라는 사회에서도 너가 원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일도 많지 않아. 어른들은 한번씩 하는 소리다 하고 흘러들어. 언제나 너의 삶은 미완성이기도 했지만 꼭 완성을 하는 일도 있길 바래. 그리고 꼭 너의 뜻이 같은 사람을 만나고 좀 더 거기서 안정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지금도 흔들리고 있겠지만 정신도 똑바로 차려야해. 가끔 조언을 들으면 너에게 도움 되는 일이다. 하고 듣고 그렇게 지내고 하면 되. 정말 나는 무엇으로 정의 해야 할까.  너는 사람들에게 재미도 주었지만 너의 마음은 항상 고독한 사람으로 남게 되는 건 아닐까.

너무 많은 생각도 하지 말자. 부모님은 너는 그 일이 아무일도 아니라고 했지만 글과 그림이 

사람들로 부터 너를 증명해 낼 수 있는 힘이고 하니깐. 좋아하는 일도 계속 해나가.

그리고 기회가 되면 실천을 하는 거도 중요하다. 꼭 그땐 놓치지 말고 움직여. 걱정은 하겠지만 그 걱정이 너를 해결해 주거나 그러진 않아. 세상에는 네가 겪은 일보다 힘들어 하는 사람들도 있어. 겨울을 걷고 있는 이 길이 눈에 의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래. 너의 손끝에서 피어나고 있는 예술은 놓치지는 말고.



2025년 11월 13일 목요일

수채화(습작2)

11월 13, 2025 0 Comments

 수채화

김소현(습작2)

그림 부문에서 주로 그린 그림은 수채화, 수채화는 물을 이용해서 그린다. 재료는 붓과 물감 파레트 물통, 휴지가 있으면 된다. 나는 집에 와서 그림 도구들을 나열하고 그림 그릴 준비를 한다. 일단 먼저 붓을 물에 담그고 물감을 묻혀본다. 그리고 물감을 파레트에서 색을 만들어 낸다. 색은 한 가지 색을 칠하면 맑게 나타낼 수 있고 두 가지 색이 만나면 그 색이 합쳐지면서 또 다른 색이 창조된다. 또한 물감 양 조절에 따라 여러 가지 색을 낼 수 있다.

물감은 두 가지 또는 세 가지 또는 그 이상으로 색을 섞을 수 있다. 하지만 너무 색이 들어가면 색깔이 어두워지고 탁해진다. 그래서 처음부터 그림을 그릴 때는 물을 많이 섞어서 맑고 연한 색부터 쓴다. 원래 수채화는 쉽게 쓸 수 있는 도구이기도 하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어려운 작업이기도 하다. 바로 물 조절이다. 수채화는 한번 색을 칠하면 점점 수정이 어려워지는 작업이기도 하다. 물감 양을 너무 많으면 탁해지고 물을 많이 섞으면 물이 번져서 색감이 잘 안 나올 때가 있다.

나는 수채화를 할 때 그 부분이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기도 했다. 처음 수채화를 배울 때는 일단 보이는 대로 색을 사용한다. 어떤 색감을 쓸지 모르겠지만 일단 그림을 하다 보면 내가 원하는 색감을 찾아낼 수 있다. 지금 보아도 수채화는 단순하지 않다. 밝음과 어두운 부분을 구분해 내야 했고 같은 색에도 다른 색들을 표현해야 한다. 보색대비라고 색도 적절히 배치해야 한다. 그리고 입체감을 낼 때는 경계선을 없애기 위해 붓을 부드럽게 써야 했다.

내가 초반에 그리는 수채화는 칙칙하고 탁하기도 했다. 그 실수를 반복하면서도 고쳐지는 게 어려웠다. 그리고 물감을 묻힐 때 물을 적게 써서 맑은 색이 나오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수채화 작업을 하면 선생님이 색이 너무 두텁게 들어갔다고 말했다. 그러면 수채화 지우개라고 하는 솜이 있는데 그걸로 물감을 닦아내기도 한다. 어떤 때에는 수채화를 솜으로 지우다가 피기도 한다. 핀다는 건 더 이상 물감을 닦아내도 지워지지 않고 종이에 색이 물든다는 뜻이다.

가끔 흰색 물감을 쓰기도 하지만 잘 안 한다. 보통 수채화를 할 때는 흰색을 쓰지 않는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쓸 수 있다. 흰색 물감은 색에 덮어서 포인트를 주고 싶을 때 사용한다. 원래는 수채화를 그릴 때는 자연스럽게 만드는 게 더 좋다.

그렇게 어깨 너머 배웠는데 선생님은 너의 그림은 평면이고 색이 똑같다라는 얘기를 한다. 나도 아직 수채화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듯하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나면 어떤 게 잘못되었는지 본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선생님도 너는 다음에 내가 가르치지 않더라도 수채화는 잘하게 만들어 줄게.’라고 하셨다. 그런 선생님이 한 말을 들으면 가르침을 배운 나도 불만을 하거나 그렇진 않았다.

지금도 수채화를 하고 있는데 늘 어떻게 하면 그림을 더 맛깔스럽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그래서 그림을 쳐다보다가도 다시 한참을 보고 있다. 이전에는 수채화를 해도 지루하기만 했다. 지금은 그 과정도 즐기는 방법을 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색이 나올 때까지 계속 그려 보기로 한다. 하지만 그려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는 그려지지 않는다. 수채화의 길을 정말로 멀구나.

하지만 수채화는 하다가 보면 그 매력 빠지게 된다. 알록달록한 색감이 내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는 걸, 그게 수채화 그림이 주는 힘이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동안에는 내가 보는 세상도 수채화로 보인다. 나는 항상 그 감성을 잃지 않고 나아가기를...

2025년 11월 7일 금요일

그 겨울 갤러리 아르바이트 (습작1)

11월 07, 2025 0 Comments

 그 겨울 갤러리 아르바이트

 

김소현(습작1)

 

스산한 겨울바람이 부는 날, 나는 정해진 날짜에 아르바이트 근무를 하러 갔다. 내가 주로 다닌 구역은 마산에 창동이었다. 졸업하고 20대 중반에 창동에 있는 화실에서 공부도 해야 했고 재료비와 용돈이 필요했다. 그리고 창동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며 생활하고 있었다.

어느 날 내가 근무하는 곳에서 갤러리 관리하는 일을 맡아달라고 한 적이 있다. 직원분이 갤러리 일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해주었다. 그리고 나는 카운터에 앉아 일을 보았다.

갤러리 안에서는 근무해 본 적 없는지라 처음에는 어색했다. 내가 맡은 일은 사람들이 오면 인사를 하고 방문한 사람 수를 세는 일이었다. 갤러리 내부에는 위에 난방이 되어있어 따뜻했다. 사실 갤러리 업무는 주 업무가 아니고 센터 내에 하는 다른 분야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그곳은 주로 난로를 사용하고 있었다.

사실 겨울이 되면 난로를 배치해 놓는다. 하지만 난로 밖으로 들어오는 찬 공기가 있어 옆을 시리게 했다. 앞으로 나는 이와 비슷한 일을 하면 좋겠다. 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갤러리 안에서 지나온 시간에 대해 회상에 젖고 있었을 때 손님이 한 분이 들어왔다.

나는 전시 팸플릿을 주고 안내해 주었다. 손님이 갤러리 구경으로 하고 나가기 전에 건넨 말이 있다. ‘고생하시네요.’ 나는 그 시기에 마음도 추운 사람이었다. 이전부터 일을 시작하면 실수를 자주 했고 동작이 빠르지 않았다. 내가 경험한 일들에는 눈치를 받는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일을 시도하면 적응하는데도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일에서는 쭈뼛거리며 자신감이 없어 했던 나였다. 갤러리에서 있을 때, 보통 창동 주변에 있는 위치를 물어보기도 한다. 그러면 내가 창동 위치를 안내하고 다음번에도 방문을 해주라고 인사를 건네었다.  그러자 사람들이 고맙다는 말을 함께 전해 주었다. 나는 갤러리에 방문하는 사람들의 친절한 말 한마디에 감동도 받았다. 어떤 분은 핫팩을 하나 주기도 하고 사탕과 간식도 먹으라고 주셨다.

그리고 창동예술촌 안에 작가님들이 거주를 하고 계신다. 작가님들이 센터 내 사업으로 체험활동을 하게 되면 갤러리에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때 나도 중간에 도운적이 있었다.

내가 근무한 시간은 6시간 정도였다. 그 후로는 원래 하던 아르바이트 외에는 갤러리 안에서 일할 기회가 없었다. 사실 내가 일하면서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걸까.’라며 갤러리 업무를 보고 있는 시간 동안 많은 생각이 스쳐 갔다.

현재 내 방에 앉아 공부하고 있을 때 예전처럼 추위를 느끼는 일은 없다. 하지만 그날에 근무했던 갤러리에서의 따뜻함은 지금도 생각하고 있을 만큼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