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7일 목요일

라오스 해외 봉사에서 있었던 에피소드

11월 27, 2025 0 Comments

 

라오스 해외 봉사에서 있었던 일들

해외 봉사에서 못다한 이야기


2015년도에 라오스 해외 봉사를 다녀왔습니다. 첫 대외 활동이고 처음으로 해외를 동남아로 갔습니다.

(일본에는 아직 안가본...) 

그 시기에는 한국에서는 겨울이었지만 동남아는 여름 기후 였기에 타이베이를 가기 전에 

여름 반팔로 갈아 입었습니다. 타이베이 공항에서는 쇼핑을 하고 부원들과 식사도 같이 했었습니다.

태국에 도착하니 후덥지근한 기온이  들어오는 느낌이었습니다. 마치 열대식물원을 구경가는 

느낌이기도 했습니다. 


태국에서 경유해서 8시간을 더 기다려서 라오스 비엔티안까지 가는 비행기를 타고 갔습니다.

라오스까지 갈때는 작은 비행기 였기 때문에 흔들림도 좀 심했습니다.(롤러코스터 타는 줄 알았습니다. 식겁 했지요.)공항에 도착해 보니 비가 많이 왔었나 봅니다. 축축한 느낌도 있었습니다.

저녁에 식당을 가고 술집 바와 비슷한 곳에 가기도 했습니다. 휘황찬란하고 어디에 눈을 둬야할지 몰랐습니다. 그곳에서 밴드 음악을 하는 분이 강남스타일 노래도 불렀더니 주변에서 환호 소리도 들렸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라오스 한 학교에 가서 3일간 현지 생활도 하고 봉사활동도 했습니다. 

제가 맡은 분야는 도서관 벽화 그리기와 페이스 페인팅이었습니다.  (벽화는 주제 찾으려고 통영에

동피랑에 가서 벽화 그림들도 보고 갔습니다.)


#제를 올릴때 있었던일


마을학교 현지에서 신을 모시는 절이 있었는데 아침에 사람들이 기도를 하기 위해 모인다고 했습니다.

저는 옆에 있는 안내하는 라오스 친구에게 '한국에서 시주(양초 쌀 등을 부처님 상에 올리는거)를 

하는거 같아요.' 라고 했는데 그 친구(한국에 공부 하는)는 '아니에요 제 이름은 시주가 아니에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앞에 스님이 라오스어로 염불을 했는데 저는 되도록이면 슬픈 생각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할머니 핸드폰

봉사를 낮에 하고 저녁에는 현지인 분들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했습니다. 그때 가족 분들과 함께 있으면서 어떤말로 통역을 해야 할까 고민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과 사탕을 가지고 얼마만큼 멀리 튕기는지 하는 놀이도 했습니다. 그러다 핸드폰을 꺼내고 시간을 확인을 하려고 했습니다.

현지여서 그런지 핸드폰 기본 기능은 할 수 있지만 시간을 확인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곳은 와이파이가 없어 오로지 불을 밝히는 전구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때 같이 홈스테이 생활하는 할머니께서 자신의 핸드폰 

(2G)을 보이시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게 스마트 폰인데 뭔가 미안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또 한번 새벽에 화장실을 가려고 폰에 전등을 켰었습니다. 그때 할머니가 잠에 깨시더니 다시 자신의 핸드폰을 보여주시는거 였습니다. ( 두번 민망했습니다.)

#닭고기

현지에서 생활하는 마지막 날에 학교 안에서도 제를 지내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지쳐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도 함께 와서 의식을 하고 팔에 끈도 묶어 주었습니다. 끈을 묶어주는게 악귀를 물리고 행운을 비는 의미에서 묶어 주는 거라고 했습니다. 그거를 아침까지 하고 있어야 그 운이 유지 된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마을 안에서 닭을 삶으셔서 같이 기도 하는 부원들에게도 고기도 나눠 주었습니다.

 p.s. 그런데 보니 다른 사람들보다 나에게 고기를 더 얹어 주는거 같았다.


관광하면서 있었던일

#블루라군

블루라군이 라오스에서 제일 유명한 곳입니다. 물색이 푸른 빛깔이어서 이쁘기도 합니다. 

여기서 부원들이 다이빙 실력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저는 한 사람 물에 입수를 할때 옆에 과자가 있어서 먹다가 '이렇게 과자를 뜯어 먹는 맛이 있군..'하고 이야기 했습니다.(우연의 일치?)

일단 저는 이 부분들이 봉사 하는 가운데 인상깊은 일이었는 데요. 풍경을 보고 와서 마음이 뿌듯해야 하는데 고생이 2배여서 꼭 좋지많은 않았습니다. 나름 겪었던 일을 꺼내보게 됩니다.

나의 에피소드 끝



2025년 11월 26일 수요일

동사무소 앞 분식 포장마차 트럭(습작12)

11월 26, 2025 0 Comments

 동사무소 앞 분식 포장마차


김소현(습작 12)


우리집 주변 동사무소 앞에 분식 포장마차 트럭이 있다. 내가 5살 무렵부터 이사 왔을때 부터

동사무소가 새 건물로 지어지기전 부터 있었다. 그땐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같이 하고 있었다.

핫도그 작은 거만해도 500원 이었는데 밀가루를 더 묻혀서 두껍게 만든 핫도그는 천원이었다.

순대도 1인분에 2500원이었다. 사실 어릴때는 잘 몰랐다. 학원을 마치고 나면 늘 그 포장마차

를 지날때 입맛을 다시곤 했다. 엄마는 언제 그 마음을 알아챘는지 오뎅이라도 먹고 갈까?

하고 말을 건넸다. 그때 나와 동생은 먹고 싶었던 분식 하나 시켜서먹기도 하고 오뎅도 몇개

건져서 먹었다. 그리고 뜨거운 오뎅 국물을 떠서 호호 불며 먹었다.  그 포장마차에서 파는 오뎅은 

하나에 500원 하던 시기였는데  3개를 먹으면 천원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오고 간 자리에는 

몇 사람끼리 와서 오뎅을 먹고  꼬지 놓고간 거만 해도 10개 이하 정도 되었다.  

그리고 가장 추울때 간식이 가장 먹고 싶은 계절이었다. 그 포장마차는 생각이 나면 들르는 장소가

되었다.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며 계속 하고 있다.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핫도그를 시킬때  큰거로 

달라고 하는데 아저씨가 설탕 또는 케첩을 뿌려 먹냐고 먼저 물어 본다.  물론 나는 둘다 해달라고 

한다. 케첩만 하면 발라진 부분 외에는 빵이 밋밋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 포장마차와 내가

시간이 흐르는데 20년은 더 되었다. 지금은 물가 때문에 가격이 오르고 가격대도 올랐지만 

장사일도 아저씨  혼자서 하고 있다. 하지만 물가가 올라도 지금 다른 곳 물가에 가격대에 비하면 

정말 저렴하게 분식을 판매한다.  나는 거기서 순대를 사고 주변에 정육점에서 곰국을 산 뒤

집에 와서 곰국과 함께 순대를 넣어 끓여 먹기도 한다. 그러면 순대국도 된다.

포장 마차를 보면서 항상 그곳에 대한 기억도 나고 그래서 지금도 그 자리에서 있어줌에 

감사하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오늘은 추운데 그 포장마차에 호떡 하나 사러 가야 겠다.


p.s 예전에 동사무소가 지금 위치 말고 밑에 있을때 잠시 알바를 했었는데 그곳에 세무과 언니가 

주변에 분식 파는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래서 내가 우리집 주변에

포장 마차가 있다고 하니깐 거기까지 어떻게 올라가냐 하고 말을 한 적이 있다.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도 그때 기간동안만 했었다)


2025년 11월 18일 화요일

나에게 보내는 편지(습작3)

11월 18, 2025 0 Comments

 나에게 보내는 편지


김소현(습작3)


소현아 나는 지금 30대 초반이야. 나는 지금도 불안정하기도 하지만 또 나름의 삶을 살고 있어.

너가 그래도 이렇게 열심히 달려와서 내가 원하는 일도 할 수 있게 되었잖아. 나는 20대의 불안한 

나도 충분히 멋지고 이쁜 사람이야. 나는 나 스스로에게 칭찬을 해주는 일이 없었지.

너가 하고 싶은 미술도 하고 블로그도 하고 너가 꿈꾸는 일을 하기 위해 이렇게 만들어 왔잖아.

나는 참 꿈이 많이 바뀌었어. 그런데 그 중에서도 미술을 참 좋아 하는거 같아, 글쓰기도 좋아하고, 너는 그거 두개만으로도 내 삶의 전부인거 처럼 뛰어들며 살고 있어. 

   나는 이것만큼 꼭 해내야해 하고 시도 해본일이 참 많은거 같아, 너는 너무 여리고 그래서 곧잘 

사람들의 말을 받아들이기만 했어, 그러면서도 너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에게도 이해를 하려고 했어.

너는 그런 말을 듣고도 사회 생활을 하면서 너가 상처를 받은것도 모른채로 그렇게 살아 왔구나.

    너에게 모든 일들이 처음이고 시간이 많이 걸리기도 했어, 일에서는 항상 느렸지, 그래서 너는 사람들에게 이상한 사람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어. 나는 조용하지만 너를 표현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거 같더라. 그래서 나는 그림이나 예술을 좋아 했나봐.

  그리고 일은 너는 충분히 해내고 있음에도 주변 사람들이 너를 그렇게 봐주지 않는다데에 안타깝고 그래. 하지만 기억해둬 너가 지금은 애매한 사람 일지 몰라도 너 안에 빛을 간직하고 실행해 나가면 그건 결과가 나타난다는 거야, 그러니 상처 받지 말고 견뎌내길 바래.

그리고 나중에는 너의 마음을 잘 아는 사람도 만나게 될꺼야. 너가 원하는 친구도 사귀었잖아.

  나중에는 진짜 네가 찾는 그 길이 있다는거야. 그러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앞서나갈 수 있고 스스로도 나는 삶을 잘 살았다고 느끼는 날이 와. 그리고 지금 너의 꿈은 잠시 넣어두는게 좋을거 같아. 너가 그 꿈을 이루기 전까지 확실하지 않으면 이루지 못한 결과에 비난이 화살도 받을 수 있어.

   그런 삭막한 사회에서 나는 한 줄기 물처럼 그런 사람이 되길 바래. 그렇다고 너무 물이 깨끗하면 물고기가 살지 않을 수 있어. 가끔은 사람들에게도 맞춰주며 그렇게 가다보면 너가 생각하는 일도 실현되는 날이 와, 위버맨쉬, 너 자신을 믿어. 한 예술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영감을 얻기도 했잖아. 지금 내가 적고 있는 이 글도 힘들때면 계속보고 너의 목표를 잃지 말고 나아가.

   이 글이 지금의 너의 버팀목이 되길 바래. 지금의 틀에 갇혀서 앞에 있는 일만 보지 말고

좀 더 넓게 보는 시각도 필요해. 한국이라는 사회에서도 너가 원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일도 많지 않아. 어른들은 한번씩 하는 소리다 하고 흘러들어. 언제나 너의 삶은 미완성이기도 했지만 꼭 완성을 하는 일도 있길 바래. 그리고 꼭 너의 뜻이 같은 사람을 만나고 좀 더 거기서 안정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지금도 흔들리고 있겠지만 정신도 똑바로 차려야해. 가끔 조언을 들으면 너에게 도움 되는 일이다. 하고 듣고 그렇게 지내고 하면 되. 정말 나는 무엇으로 정의 해야 할까.  너는 사람들에게 재미도 주었지만 너의 마음은 항상 고독한 사람으로 남게 되는 건 아닐까.

너무 많은 생각도 하지 말자. 부모님은 너는 그 일이 아무일도 아니라고 했지만 글과 그림이 

사람들로 부터 너를 증명해 낼 수 있는 힘이고 하니깐. 좋아하는 일도 계속 해나가.

그리고 기회가 되면 실천을 하는 거도 중요하다. 꼭 그땐 놓치지 말고 움직여. 걱정은 하겠지만 그 걱정이 너를 해결해 주거나 그러진 않아. 세상에는 네가 겪은 일보다 힘들어 하는 사람들도 있어. 겨울을 걷고 있는 이 길이 눈에 의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래. 너의 손끝에서 피어나고 있는 예술은 놓치지는 말고.



2025년 11월 13일 목요일

수채화(습작2)

11월 13, 2025 0 Comments

 수채화

김소현(습작2)

그림 부문에서 주로 그린 그림은 수채화, 수채화는 물을 이용해서 그린다. 재료는 붓과 물감 파레트 물통, 휴지가 있으면 된다. 나는 집에 와서 그림 도구들을 나열하고 그림 그릴 준비를 한다. 일단 먼저 붓을 물에 담그고 물감을 묻혀본다. 그리고 물감을 파레트에서 색을 만들어 낸다. 색은 한 가지 색을 칠하면 맑게 나타낼 수 있고 두 가지 색이 만나면 그 색이 합쳐지면서 또 다른 색이 창조된다. 또한 물감 양 조절에 따라 여러 가지 색을 낼 수 있다.

물감은 두 가지 또는 세 가지 또는 그 이상으로 색을 섞을 수 있다. 하지만 너무 색이 들어가면 색깔이 어두워지고 탁해진다. 그래서 처음부터 그림을 그릴 때는 물을 많이 섞어서 맑고 연한 색부터 쓴다. 원래 수채화는 쉽게 쓸 수 있는 도구이기도 하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어려운 작업이기도 하다. 바로 물 조절이다. 수채화는 한번 색을 칠하면 점점 수정이 어려워지는 작업이기도 하다. 물감 양을 너무 많으면 탁해지고 물을 많이 섞으면 물이 번져서 색감이 잘 안 나올 때가 있다.

나는 수채화를 할 때 그 부분이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기도 했다. 처음 수채화를 배울 때는 일단 보이는 대로 색을 사용한다. 어떤 색감을 쓸지 모르겠지만 일단 그림을 하다 보면 내가 원하는 색감을 찾아낼 수 있다. 지금 보아도 수채화는 단순하지 않다. 밝음과 어두운 부분을 구분해 내야 했고 같은 색에도 다른 색들을 표현해야 한다. 보색대비라고 색도 적절히 배치해야 한다. 그리고 입체감을 낼 때는 경계선을 없애기 위해 붓을 부드럽게 써야 했다.

내가 초반에 그리는 수채화는 칙칙하고 탁하기도 했다. 그 실수를 반복하면서도 고쳐지는 게 어려웠다. 그리고 물감을 묻힐 때 물을 적게 써서 맑은 색이 나오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수채화 작업을 하면 선생님이 색이 너무 두텁게 들어갔다고 말했다. 그러면 수채화 지우개라고 하는 솜이 있는데 그걸로 물감을 닦아내기도 한다. 어떤 때에는 수채화를 솜으로 지우다가 피기도 한다. 핀다는 건 더 이상 물감을 닦아내도 지워지지 않고 종이에 색이 물든다는 뜻이다.

가끔 흰색 물감을 쓰기도 하지만 잘 안 한다. 보통 수채화를 할 때는 흰색을 쓰지 않는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쓸 수 있다. 흰색 물감은 색에 덮어서 포인트를 주고 싶을 때 사용한다. 원래는 수채화를 그릴 때는 자연스럽게 만드는 게 더 좋다.

그렇게 어깨 너머 배웠는데 선생님은 너의 그림은 평면이고 색이 똑같다라는 얘기를 한다. 나도 아직 수채화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듯하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나면 어떤 게 잘못되었는지 본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선생님도 너는 다음에 내가 가르치지 않더라도 수채화는 잘하게 만들어 줄게.’라고 하셨다. 그런 선생님이 한 말을 들으면 가르침을 배운 나도 불만을 하거나 그렇진 않았다.

지금도 수채화를 하고 있는데 늘 어떻게 하면 그림을 더 맛깔스럽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그래서 그림을 쳐다보다가도 다시 한참을 보고 있다. 이전에는 수채화를 해도 지루하기만 했다. 지금은 그 과정도 즐기는 방법을 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색이 나올 때까지 계속 그려 보기로 한다. 하지만 그려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는 그려지지 않는다. 수채화의 길을 정말로 멀구나.

하지만 수채화는 하다가 보면 그 매력 빠지게 된다. 알록달록한 색감이 내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는 걸, 그게 수채화 그림이 주는 힘이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동안에는 내가 보는 세상도 수채화로 보인다. 나는 항상 그 감성을 잃지 않고 나아가기를...

2025년 11월 7일 금요일

그 겨울 갤러리 아르바이트 (습작1)

11월 07, 2025 0 Comments

 그 겨울 갤러리 아르바이트

 

김소현(습작1)

 

스산한 겨울바람이 부는 날, 나는 정해진 날짜에 아르바이트 근무를 하러 갔다. 내가 주로 다닌 구역은 마산에 창동이었다. 졸업하고 20대 중반에 창동에 있는 화실에서 공부도 해야 했고 재료비와 용돈이 필요했다. 그리고 창동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며 생활하고 있었다.

어느 날 내가 근무하는 곳에서 갤러리 관리하는 일을 맡아달라고 한 적이 있다. 직원분이 갤러리 일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해주었다. 그리고 나는 카운터에 앉아 일을 보았다.

갤러리 안에서는 근무해 본 적 없는지라 처음에는 어색했다. 내가 맡은 일은 사람들이 오면 인사를 하고 방문한 사람 수를 세는 일이었다. 갤러리 내부에는 위에 난방이 되어있어 따뜻했다. 사실 갤러리 업무는 주 업무가 아니고 센터 내에 하는 다른 분야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그곳은 주로 난로를 사용하고 있었다.

사실 겨울이 되면 난로를 배치해 놓는다. 하지만 난로 밖으로 들어오는 찬 공기가 있어 옆을 시리게 했다. 앞으로 나는 이와 비슷한 일을 하면 좋겠다. 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갤러리 안에서 지나온 시간에 대해 회상에 젖고 있었을 때 손님이 한 분이 들어왔다.

나는 전시 팸플릿을 주고 안내해 주었다. 손님이 갤러리 구경으로 하고 나가기 전에 건넨 말이 있다. ‘고생하시네요.’ 나는 그 시기에 마음도 추운 사람이었다. 이전부터 일을 시작하면 실수를 자주 했고 동작이 빠르지 않았다. 내가 경험한 일들에는 눈치를 받는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일을 시도하면 적응하는데도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일에서는 쭈뼛거리며 자신감이 없어 했던 나였다. 갤러리에서 있을 때, 보통 창동 주변에 있는 위치를 물어보기도 한다. 그러면 내가 창동 위치를 안내하고 다음번에도 방문을 해주라고 인사를 건네었다.  그러자 사람들이 고맙다는 말을 함께 전해 주었다. 나는 갤러리에 방문하는 사람들의 친절한 말 한마디에 감동도 받았다. 어떤 분은 핫팩을 하나 주기도 하고 사탕과 간식도 먹으라고 주셨다.

그리고 창동예술촌 안에 작가님들이 거주를 하고 계신다. 작가님들이 센터 내 사업으로 체험활동을 하게 되면 갤러리에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때 나도 중간에 도운적이 있었다.

내가 근무한 시간은 6시간 정도였다. 그 후로는 원래 하던 아르바이트 외에는 갤러리 안에서 일할 기회가 없었다. 사실 내가 일하면서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걸까.’라며 갤러리 업무를 보고 있는 시간 동안 많은 생각이 스쳐 갔다.

현재 내 방에 앉아 공부하고 있을 때 예전처럼 추위를 느끼는 일은 없다. 하지만 그날에 근무했던 갤러리에서의 따뜻함은 지금도 생각하고 있을 만큼 남아 있다.

 

2025년 11월 1일 토요일

카메라 사랑

11월 01, 2025 0 Comments

카메라 사랑
카메라 사랑

 20살 중반쯤 학교 외부에서 하는 현장 실습에 참여 했을때, 디지털 카메라를 

처음 보았습니다. 업무용으로 사용해 보곤 했는데 사용해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멋있어 보이기도 했습니다.  카메라는 비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인터넷에 검색해서 보니 100만원대 카메라를 보고 이건 절대 못사겠다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검색 리뷰를 보면서 전지현 카페라인 소니 알파

5000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건 가볍게 보이기도 하고 모양도 이뻐보였습니다.


저는 돈을 그렇게 많이 벌지는 못했지만 카메라를 사고 싶은 마음에 덜컥 

결제를 했습니다. 그때는 제가 돈을 어떻게 써야 겠다 하는데 익숙치 않았습니다.

그러다 결국 엄마 아빠에게 들키긴 했습니다. 가격은 35만원인데 아빠는 

그걸 샀냐고 해서 저를 나무랐습니다. (10만원   쓰는거도  고민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일단 산거니 쓰기는 썼습니다.


저는 그래도 카메라를 산게 기뻐서 어디 다니거나 여행을 하게 되면 

카메라를 꼭 챙겨 갔습니다. 그렇게 활용은 하니 아빠는 결국 나무란거에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날 카메라 산거에 만족했다 해도 저는 카메라에 욕심이 있었나 봅니다.

렌즈에도 관심을 가지고 DSLR 카메라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 카메라는 3년 정도 썼습니다. 그때 화면이랑 긁힌 자국이 있어 바꾸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예전에 나온 카메라가 노이즈가 풍부하다는 이야기가 있어  

저는 DSLR 카메라를 검색했습니다. 하지만 이전 카메라들은  몸값이 더 

비쌌습니다. 그 시기에 당근 마켓이 유행해서 거기도 살펴보고 했었습니다. 그리고 14만원에 거래함.


그리고 좀 낮은 가격대에 EOS D550 카메라를 보고 이걸 사기로 결정했습니다.

당근 거래를 하고 저는 또 제가 갖고 싶었던 DSLR 카메라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카메라 때문에  우여  곡절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카메라에 대한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어디로 가게되면 카메라가 쓰일 수 있어서 그게 좋았습니다. 작품 사진을 찍기도 하고

좋은 풍경을 담고 싶을때도 카메라가 이용이 되었습니다. 폰을 사용을 해도 되지만

폰은 일정 화질이 있기 때문에 확대를 하면 화면이 깨지기도 합니다.


저는 지금도 지금 가지고 있는 카메라에 만족을 합니다.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 

주변에서 작가냐고 이야기도 듣습니다. 예전에는 사진 강의하는 곳도 들으러 

가고 싶었지만 이건 그냥 취미로 하는게 좋겠다고 생각해서 하진 않습니다.


사진 정도는 도서관에 책 찾아 보면서 보려구요. (사실 다른거 할게 많습니다.)


ps. 카메라를 사면서 절대하지 말아야 할것, 네이버  카페, 당근 마켓에서 사지 않기